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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7.08 16:25:54
  • 최종수정2021.07.08 16:25:54
지인이 딸네 집에서 생일을 맞았다며 푸짐하게 차려진 생일상을 SNS에 올려놓았다. 돈다발과 떡케잌, 갈비찜, 잡채, 문어회, 쌈, 생선, 동그랑땡, 샐러드, 나물, 김치류 등. 요즘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그래도 생일상을 받은 이가 부럽긴 하다. 어린 시절의 아쉬운 기억과 아직 미혼의 자식을 둔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처지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자꾸 생일상에 시선이 쏠린다.

내 생일은 음력으로 모내기가 한창인 4월 중순이다. 하필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 엄마는 내 생일을 깜빡하기가 일쑤였다. 지금도 생각난다. 생일날, 다른 때와 달리 자반고등어나 내가 좋아하는 김, 달걀부침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와 별반 다름없는 밥상에 그나마 좋아하는 멸치 반찬 하나로 위안을 삼으며, "어? 엄마, 그래도 내 생일 잊지 않았네?", "아이고! 오늘 아침이 니생일이나? 깜짝 잊어버렸데이. 아따, 이게 고기다. 이거라도 먹어라."

엄마는 미안함과 멋쩍은 웃음으로 어제 모내기하다가 남은 멸치볶음 한 접시를 내 앞으로 내미셨다. 그것도 양이 모자라 어른들과 남자들 앞쪽에만 놓아두었던 것을. 멸치 반찬 하나도 넉넉하게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무늬만 고기인 멸치를 입에 물고 난 겨우 나오는 미소와 슬픔을 꾸역꾸역 삼켰다.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소리에 가슴 한구석에선 사랑의 돌덩이 하나가 '쿵'하며 내려앉는다. 밥상에 올려진 멸치 새끼처럼 두 눈만 멀뚱거리고 겨우 멸치의 신세보다 조금 나은 것에 만족하려 애썼다.

생일이면 늘 팥고물이 든 몽실몽실한 하얀 찐빵이 그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일이 다가오면 동그란 찐빵을 녹음테이프 돌리듯 반복하지만, 엄마는 통 요동이 없으시다. 하지만 오빠 생일에는 마치 신의 계시라도 내린 듯, 엄마는 주문 없는 찐빵을 만드시느라 갑자기 분주해진다. 우리는 어쩌다 반죽째 가마솥에 넣어 쪄낸 빵이나 한번 맛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내 생일엔 그마저도 없다. 그러니 어찌 오빠만 이뻐한다고 투정을 부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하니 농번기에 태어난 내가 제대로 된 생일상을 받기는 애초에 욕심인 것을.

결혼 후, 맏며느리란 존재는 집안의 대소사에 있어 항상 시댁 우선의 법칙이다. 내가 태어난 날은 시아버님이 나신 바로 다음 날이다. 아버님의 생신 하루 전날엔 시댁엘 가서 온종일 음식을 장만하고 생신 날은 큰댁과 작은댁의 친척분들을 초대하여 아침상에, 점심상까지 마무릴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완전 녹초가 된다. 이튿날 내 생일은 피곤이 쌓여 깜빡하거나, 가끔 미안해진 남편의 쇠고기 없는 미역국과 저녁 외식으로 대충 마무리한다. 미역국은 꼭 챙겨 먹으라는 시어머님의 사랑의 전화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바쁜 직장생활에서 내 생일은 그렇게 축복의 날이라는 감각을 잊게 했다.

환갑을 맞은 지인과의 생일 저녁은 몇몇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우는 것으로 끝냈다. 머잖아 우리 부부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예전 우리 시부모님은 동네 어르신들을 다 모셔다 놓고 넓은 예식홀에서 회갑 잔치를 해드렸는데….

그런 와중에 며느리의 생일을 으뜸으로 챙기는 아는 언니를 보았다. 낯선 집에 시집와서 사느라 고생한다고, 며느리의 생일엔 두 부부가 케잌을 사 들고 아들네로 가서는 미역국도 끓여주고, 손자들도 봐주며, 용돈도 주며 여행도 보내준단다. 페미니즘을 부르짖는 시대지만 그런 틀을 깨기가 쉽지 않은데,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제 며느리는 항상 가족에게 봉사하는 존재라는 인식은 아마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아닐까 한다.

며칠 후면 내 생일이다. 여전히 엄마의 생일상이 그립지만, 엄마는 가고 상처받은 내 어린 영혼만 남았다. 이제는 성숙해진 또 하나의 내가 친정엄마를 대신해야겠다. 갓 지은 쌀밥에 생선 한 조각, 달걀부침과 들기름으로 방금 구운 김, 생각만 해도 고소한 향기가 난다. 쇠고기가 들어간 뽀얀 미역국에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찐빵도 한 접시 놓고. 낳으시느라 고생하신 엄마께도 술한잔 올리고, 내 안의 어린 나를 부탁해보자. 기분이 흐뭇하다. 가족들에게 기억될만한 추억을 남기는 일은 좋은 일이다. 당분간 힘이 들더라도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생일상은 더 챙겨야겠다.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생일보다는 미소로 남는 생일이라면 후회는 덜하겠지? 올해는 여느 생일 때보다 더 충만하고 축복받는 생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전금희

푸른솔문학 신인상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현) 창신 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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