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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아버지의 눈물

  • 웹출고시간2020.04.02 16:09:43
  • 최종수정2020.04.02 16:09:43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신 후 그동안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아련한 추억에 늘 사로잡혀 있었다. 금년에는 설 명절을 쇠며 웬일인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게 떠올랐다.

아버지란 존재가 무엇일까.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에서는 아버지의 위상이 절대적인 존재였었다. 가장으로서 온 가족을 이끌고 가정경제를 책임지며 가족들 안위(安危)를 책임져야만 했다. 세월 가며 산업사회가 되고 도시생활과 핵가족제도가 정착하며 아버지의 위상은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 대부분 가정의 경제권은 어머니들 차지하고 있다. 자녀교육을 비롯한 가정의 운영권이 어머니에게 넘어간 것이다. 아버지의의 역할이 줄어들고 초라한 존재가 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고 있다.

새벽에 집을 나가 일터로 가면 저녁에 들어와서 자식들 얼굴 마주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고, '기러기 아빠' 로 처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아버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식들 결혼하고 독립하면 아버지의 존재는 더욱 희미해진다. 그 집 아버지의 서열이 반려견(伴侶犬) 보다 못하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어릴 적 내가 세월가면 어느새 아버지가 되고, 내 자식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는 늙은 할아버지가 되는 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입시에 낙방을 했을 때다. 대학교 진학은 꼭 서울로 가야겠다는 야심에 차있던 시절이다. 집안 어른들은 명문대학이 아니면 서울로 유학은 안 된다고 하셨다.

마음의 갈등을 느끼며 서울로 가 대학입학 시험을 치렀다. 초조하게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날 아침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아버지는 내게 '대학 갈 생각 말고 취직이나 하라' 며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만류하시며 자초지종을 듣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합격자 발표 전날 내가 낙방한 걸 확인 하셨다고 했다. 낙담하신 아버지는 허탈하고 서글픈 표정에 눈가에 물기가 일었던 것 같다.

나는 울며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한 없이 걸었다.

일제 치하에서 아버지는 지금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전신인 '수원고농'을 졸업하시고 공무원으로 근무 하고 계셨다. 우리나라 인구의 80-90%가 농민이던 시절이다. 아버지는 그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몸무게가 주는 줄도 모르고 밤을 새워 공부했다며 나를 격려 하셨다. 자식의 명문대학 입시 낙방이 아버지께는 자존심 상하고 한이 맺히셨을 것이다.

'근면 정직 성실' 이라는 우리 집안 가훈을 지키며 한평생을 살다 가신 아버지시다. 농촌사회 대농가에서 생활하시며 모범 공무원으로 대통령 훈장을 받으셨다. 옛날에 분뇨(糞尿)를 퇴비로 사용하던 시절이다. 인분을 담아 지게로 지고 논밭으로 옮기는 운반수단인 '똥장군'이 있었다.

"똥장군을 지는 도청 과장"이라는 세상 사람들 칭찬하는 이야기도 들으셨다. 농민들과 뜻을 함께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세상을 사셨다. 내가 대학을 다니다가 학보로 입대하여 군 생활을 하던 때다. 병영으로 매달 월간지 '사상계'를 보내시고 책머리에는 늘 '안전보장 규정엄수'라고 쓰셨다. 부대장에게도 몇 차례 격려의 편지를 보내셨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가 살다 가신 것처럼 세상을 정직하고 근면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세월 따라 세상 살아가는 모습도 바뀐다지만 아버지의 훌륭했던 삶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나의 대학 입시 낙방으로 소란스러웠던 그날 할아버지 앞에서 흘리시던 아버지의 눈물을 생각하면 내 눈시울도 축축해진다.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고 서운하게 해 드린 불효(不孝)는 내 평생 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금년 설 차례에서 아버지께 무언의 사죄를 드렸다.

이황연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성균관 典人

저서「인생과 나의 삶」 「살아온 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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