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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꽃이 있는 식사

  • 웹출고시간2021.04.22 16:54:01
  • 최종수정2021.05.06 14:08:43
작은 애가 공부하러 떠나고 집안이 적적하다고 생각했는지 서울서 회사에 다니며 늘 바쁘다던 큰딸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다.

장미 조화 한 다발을 사 들고 와, 별 말없이 식탁에 꽂아 놓는다.

봉오리 지거나 연하고 약간 붉은 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보기에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방금 꽃밭에서 꺾어 온 듯,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생화다.

짤막히 늘어진 하얀 레이스 식탁보와도 잘 어울렸다.

검박하던 작은 부엌이 일시에 환해졌다.

상기된 철부지처럼 나는 마냥 싱그레, 싱그레했다.

딸아이는 내 모습을 보며 말없이 가만한 미소를 짓는다.

기쁨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제주도 연수 갔을 때, 아주 훌륭한 분재원에 들린 적이 있다.

아버지와 함께 대를 이어 이십여 년 넘게, 오로지 나무만을 가꾸고 있다는 젊은 분재가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꽃을 선사할까요? 꽃은 활짝 피어 벌 나비를 오게 하더군요. 꽤 지나 저는 알아냈어요. 그것은 아마도 꽃처럼 마음의 문을 열라는 말 아니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숙연하니 머릿속이 환해짐을 느꼈다.

문!.... 꽉꽉 닫아 건 문, 열까 말까 재는 문, 언제든 닫을 태세로 빼꼼히 열고 고개만 내민 문, 연 둥 만 둥한 문, 필요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하는 문 등

사람들의 갖가지 마음의 문....

꽃은 있는 힘을 다해 뿌리를 쫙쫙 뻗으며 물을 길어 올리고, 햇볕을 끌어 모으고 모아, 자신의 마음을 크게, 보다 크게 열려고 했을 것이다.

밤낮 없이 일념으로 준비했지만, 정작 먹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꿀과 정성을 다한 그윽한 향내로, 가능한 한 활짝!

그러면 벌과 나비들은 진정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오고 아니, 저절로 꽃에게로 날갯짓을 향하게 될 것이고 화기애애한 대화들이 자연스레 오고 가리라.

그것이 다다. 그것이 끝이고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꽃처럼 아름 가득한 최선의 마음을, 그것도 연다는 마음 없이 활짝 연다면 그 앞에선 혹 삿되거나 굳어있던 그 누구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 아슴아슴 순수에로 젖어들며 부드러워질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한 자리에는 내면의 맑음과 평온을 갈구하는, 퍽이나 고운 사람들이 모여들게 될 것이다.

맑음이 맑음을 부르고 참이 차오르는 따듯한 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벌 나비가 다녀간 자리엔 융숭하니 탱탱한 열매가 남지 않았는가.

그것이 꽃에겐 축복이리라.

생각지 않게 얻는 소소한 덤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기뻐하던가.

마음을 활짝 여는 사이, 자연스레 영글어 가는 삶은 그저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활기차고 넉넉하리라.

모처럼만에 집에 온 어여쁜 딸아이에게 무엇을 해줄까 마음이 즐겁다.

주섬주섬 돌멩이로 칸살 지른, 조막만 한 채마밭은 밥상을 풍성하게 하는데, 끝물로 만들어 뒀던 장아찌용 토마토는 꼭 짜 무치고, 벌꿀에 재운 아카시아 꽃 효소는 무엇과 어울릴까 머뭇거리기도 한다.

죽순은 담백하게 볶고, 분이 많은 감자는 갈아 메밀가루와 섞어 부침개로 부치고, 갓 따온 깻잎, 당귀 잎, 차조기 잎엔 너덧 첨 구운 고기를 곁들이는 등...

부산스레 움직였다.

꽃 한 다발이 놓인 식탁은 소박하나 풍성하고 화사하였다.

딸아이가 연방 "음-음-"하며 달게 먹는 것을 보니 나도 오늘따라 더 맛있다.

작은애 얘기며 회사얘기며 두런두런 주고받는 가운데 마음을 연 꽃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되새김 하는 듯 곰 삭이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꽃을 바라본다.

아마도 딸애는 여느 때와는 다른, 새로운 꽃을 마음속에 심었으리라.

진심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 그것으로 끝인 아름다운 꽃을 눈에 넣었으리라.

작은애가 즐겨 마시던 야생화 꽃차를 우려 들며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눈웃음을 함박 지었다.

내 눈에 비친 그 애는 한 송이 환한 꽃이었다.

정복희 프로필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한국문인 시 등단

충청대학교 교수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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