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섬기거나 보살피는 눈으로 세상의 풍경들을 바라본다. 인간의 우월적 권위를 버리고 사물의 입장에서 사물이 처한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사물들이 숨기고 있던 상처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내곤 한다. 이런 수평적 교감의 태도는 그의 시집 전반에 깔려 있다. 흥미로운 건 그의 여러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들이 문예지 발표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시집을 묶는 과정에서 조사 하나, 토씨 하나, 어미 하나라도 계속 고치고 고치기 때문이다. 완성을 위한 끝없는 수정과 교체, 시 작업에 대한 이런 치열함과 엄격함이 손택수 특유의 시법(詩法)을 탄생시킨다.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2003)을 통해 그는 옛이야기나 설화 속의 호랑이를 현대 도시문명의 현란한 불빛 속으로 호환하여 새로운 민중서사의 힘을 보여주었다. 가족사를 통해 삶의 깊고 아픈 상처들도 섬세하게 짚어냈다. 두 번째 시집 『목련전차』(2006)에서는 동물성 대신 식물성을 강화시켜 대지의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아픔을 곡진한 가락으로 풀어냈으며, 세 번째 시집 『나무의 수사학』(2010)에서는 소멸과 모순의 현실을 관통하는 역동적 상상력을 펼쳐 도시적 삶의 애환을 그려냈다. 은유를 통해 사물과 자아의 동일성 세계로 더 깊이 나아가면서 타자들을 억압하지 않고 각각의 존재를 긍정하는 열린 미학을 펼쳐보였다. 그리고 네 번째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2014)에서는 삶의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세밀히 관찰하여 농밀한 언어로 우리 생의 뒷면과 자연의 섭리들을 담아냈다.
오래 전부터 그의 시를 접해오면서 내가 주목한 점 중 하나는 시적 자아의 갈등과 평화 양상이다. 이는 주로 도시 공간과 시골 공간의 대립 균열에서 발생하곤 한다. 대체로 그에게 도시는 내적 갈등과 자아의 균열을 낳는 부정공간으로 말의 혼돈, 말의 분열을 낳는 곳이다. 반면에 시골 고향은 매우 중요한 모태(母胎)이자 근원적 귀소(歸巢) 공간, 대지의 평화와 상생, 화엄의 상상력을 낳게 하는 원천적 낙원으로 설정된다. 왜 그런 걸까·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했던 말을 들어보자.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1970~ )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텅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