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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1.15 14:35:35
  • 최종수정2015.11.15 14:35:35

송보영

수필가

베틀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세로로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는 날실 사이를 씨실을 품고 있는 북이 쉼 없이 드나들며 실을 풀어내고, 이를 조여 주기 위한 바디가 아래 위를 오가는 순간 한 올 한 올 정교한 베가 짜여 지고 있다. 결 고운 안동포라도 짜는 것일까. 여인의 발아래 놓여 있는 옷감은 옹이 하나 없이 매끈하다. 바디가 오르내릴 때마다 퍼지는 공명이 정겹다.

베날기 과정을 알려주기 위함인가. 베틀 옆에는 아직 가공 되지 않은 삶은 대마(삼)와 이제 막 베날기를 시작한 성근 것으로 부터 결이 곱고 매끈한 실 뭉치까지 차례대로 놓여 있는 것들이 눈길을 끈다. 일손을 멈추고 관람객을 맞이하는 여인의 손을 본다. 한 번은 꼭 입어보고 싶은 고운 연분홍 베옷차림의 매무새와 달리 대마의 물이 착색 된 그녀의 손은 상처투성이다. 장인의 꿈을 키우며 베틀 위에서 한 생을 엮어가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손. 아름다운 손이다.

날실과 씨실이 들려주는 합주를 들으며 우리네 일생을 생각한다. 한 올 한 올의 실이 엮어져 한 필의 베가 짜여 짐과 같이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일 년 365일이 된다. 부여 받은 나날들을 살아낸 삶의 무늬들이 모여 한 생이 되고 삶의 흔적으로 남음이다. 그 흔적들은 보암직한 무늬 일 수도, 더러는 지워버리고 싶은 것일 수도 있으리라. 옹이가 있고 올이 굵은 거친 실로는 성근 베를 짤 수밖에 없듯이 삶의 직조를 짜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일 게다.

인생이라고 하는 직조 속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공존한다. 삶의 궤적들이 싸여 역사가 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때로는 날실이고 씨실이다. 세상이라고 하는 한 울타리 안에 존재 하는 한 어느 누구도 혼자일 수는 없다. 베틀에 놓여 있는 날실이 씨실을 품으면 바디가 아래 위를 오르내리며 제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고른 베가 짜여 진다. 함께 공존하는 우리의 삶에도 조화를 필요로 한다. 날실인 그와 나가, 씨실인 너와 내가 모여 역사를 이루어 냄이다.

지금 여기 지아비인 그와 지어미인 내가 있다. 우리의 근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득히 먼 그리움의 어느 시점에서 씨실과 날실이 만나 엮어낸 삶의 무늬 중 한 부분으로 빚어져 오늘의 우리가 되었을 게다. 지금 그와 나는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삶의 족적을 만들며 가고 있는 중이다. 남편과 내가 그려가는 삶의 무늬는 어떤 것일까. 결이 고운 한산모시나 안동포 같은 삶이길 바랐지만 베날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성글고 굵은 올에 옹이까지 듬성듬성 박힌 실로 짠 거친 베 같은 삶일 때가 많았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오느라 벽에 부딪쳐 상처투성이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 고운 세모시에 연분홍 꽃물을 곱게 들인 옷 한 벌 해 입을 만큼의 베를 짜고야 말리라는 간절함으로 늘 목이 말랐다. 타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굴곡진 삶의 실타래를 풀어가느라 힘겨웠지만 손을 맞잡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 가쁜 숨을 고르고 지난 삶의 흔적들을 반추해보며 서로를 향해 정말 수고 많았다고, 참 잘 견뎌 주었다고 박수를 보내도 좋으리라 싶다.

그와 나로 인하여 파생된 씨실이고 날실들도 고운 비단을 짜기 위해 안간힘하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세상이라고 하는 드넓은 바다에 세세토록 쌓여온 수많은 흔적들을 발판으로 보다 새로운 삶 을 창출하려 혼신의 힘을 다해 가고 있다. 인생이라고 하는 비단 한 필을 성글지 않게 짜기 위해 견고하고 아름다운 밑그림을 그리려 안간힘하며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짠하면서도 대견스럽다. 씨실과 날실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질 좋은 피륙이 탄생 되는 것처럼 세상살이의 이치도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야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의 무늬를 엮어 갈 수 있을 터. 오늘 그들이 이루어 내는 족적을 따라 다음 세대들 역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고. 하여 세상은 억겁의 삶의 흔적들이 존재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베틀 위의 여인은 아직도 베를 짜느라 여념이 없다. 오늘 그의 삶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아 미래의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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