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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비무장지대 안에서 소대 막사 지붕으로 불을 달고 날아든 통나무 사건이 있던 날이다.

소대원 중에 군산에서 배를 타다 왔다는, 키 크고 덩치 좋은 권영달 상병이라고 있었다. 이목구비까지 큼직큼직하게 잘생긴 호남형으로 늘 생글거리는 낙천주의자였다. 그 무렵 권 상병은 후임병들과 닭싸움을 하다가 발목을 겹질려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였다.

사실 권 상병이 소대 막사 뒤편에 자리한, 흙벽돌로 쌓고 거적으로 대충 앞을 가린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려면 지팡이를 짚고도 다리를 질질 끌며 진땀을 흘리곤 했었다. 하지만 몇몇은, 꾀병이 심할 뿐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써 먹는다는 둥, 안 볼 때면 지팡이가 필요치 않더라는 둥 하며 뒷담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날, 불타는 통나무가 날아들고 불침 맞은 짐승처럼 이리 뛰고 저리 닫고 하던 병사들이 소대장의 '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와 총질 이후, 쑥스러운 사태 파악이 끝나자 소대 앞마당에 다시 정렬해 인원을 확인했다. 권 상병이 보이지 않았다. 통나무 포탄을 맞고 산화(散華)한 것일까? 그 신통찮은 발을 끌고 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사라진 존재가 또 있었다. '미스 킴'이었다. 고참병 하나가 재롱이나 보며 키우다가 복날이 오면 소대원들 양기를 돋궈주겠다고 기세를 올리던 똥강아지였다. 꼬랑내 진동하는 내무반에 최소한 여인의 향기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만장일치로 합의하여 지어준, 향내 나는 이름의 소유자였다. 소대원 모두의 지극한 사랑을 독차지했던 만큼 소대원들은 권상병과 미스 킴을 애절하고도 통절하게 선후창으로 불러댔다. 얼마 후, 우리 소대원들이 식수를 길어다 먹는 비탈길 10여m 아래 옹달샘 쪽에서 권 상병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니, 어느 새 거기까지…?"

소대원들이 샘으로 내려가는 초입으로 달려가 보니 저 아래쪽에서 권 상병이 삐딱한 자세로 서서 계면쩍은 듯 부자연스럽게 오른손을 흔들고 있었다. '싸랑하는 미스 킴'을 왼쪽 옆구리에 낀 채였다.

평소에도 후임병들이 스피아 깡에다 물을 담아 어깨에 걸메고 코를 땅에 박다시피하며 올라올 수 있는 급경사였다. 소대장의 지시를 받은 몇 명의 병사가 내려가 낑낑대며 밀고 끌고 하여 권 상병과 미스 킴을 겨우 모셔올 수 있었다.

나중에 권 상병은 미스 킴과 함께 했던 사실도, 지팡이도 없이 어떻게 그 비탈길을 내려갔는지조차도 전혀 기억에 없다고 털어놨다. 절체절명의 순간엔, 다시 말해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올 경우' 참으로 불가사의한 초능력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소대원들은 그때 생생히 목도하였다.

권 상병은 그 후로도 한동안 절룩거리며 생활하다가 후방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겹질린 다리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그날 무리를 해서 상태가 악화된 것이라 했다. 우리는 미스 킴을 임무 교대한 GOP 부대에 선물로 남겨두고 철수했는데, 권 상병은 끝내 만날 수 없었다. 퇴원 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던가· 권 상병도 소대장처럼 우리에게 오래도록 안주 삼을 이야기 하나를 지어주고 통나무 포탄처럼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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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