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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왔구나!"

소대장 이 중위는 비장한 어조를 숨기지 않고 토해냈다. 이내 우왕좌왕하는 소대원들을 바라보다 소대 막사 앞에서 M16 총구를 하늘 쪽으로 세우고 '탕, 탕' 2발을 쏘았다. 이어서 소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그러지 않으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이었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방금 무언가가 일상적인 음성과 음향에 길들여졌던 고막이 차마 수용하기 힘든 굉음을 내며 지붕을 뚫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막사 안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차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사실 그 순간엔 믿고 의지하며 따랐던 고참병들도 말짱 소용이 없는 듯했다. 암행어사 출도 앞에 갈팡질팡하며 허우적대던 탐관이나 토호(土豪)들이랑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그들도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을 터이다.

GOP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밤내 불구경을 하며 철책 근무를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겨우 잠들었을까 말까 할 때쯤 '그야말로' 전쟁이 터졌으니 제 정신이었던 소대원은 아무도 없었던 셈이다. 소대장도 놀라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순간의 상황판단 후 외친 말과 행동이었음에랴!

소대장은 또 전령 현 상병에게 명령했다.

"명식아, 배낭 꾸려라. 비상식량은 절대 빠뜨리지 말고…!"

옛날 중국에서는 효시(嚆矢)를 개전 신호로 삼았다던가· 하지만 바로 전의 굉음이 전쟁선포였다면 지상과, 해상, 공중을 가리지 않고 포탄을 퍼부어댔을 법한데, 한 번의 '펑'이었나, '꽝'이었나 이후에 이어지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뒤늦게 군장을 꾸려 나오던 고참병이,

"소대장님, 저거 포탄이 아니고 불타는 통나문디요?"

하고 '꽝'소리보다 더 큰 목청으로 고함을 질렀다.

막사 앞 연병장에서 병사들을 집합시키고, 위급상황이나 전쟁이 터지면 하달해야 할 시나리오를 마악 쏟아내려던 소대장이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김 하사, 네가 가서 다시 확인하고 보고하라!"

썩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막사 입구까지 가서 갸웃 안을 들여다보던 김 하사가 또 씩 웃으며 돌아와 보고했다.

"통나무가 맞습니다!"

해마다 연초록 잎들이 제법 시야를 가리는 4월 무렵이면, 전방의 북한군들은 소위 화공작전을 벌였다. 즉 경계를 용이케 하기 위해 불을 지르는 것인데 우리에겐 그에 상응하는 맞불작전이 있었다. 주로 비무장지대의 온 산과 들이 서울 야경을 연상케 하며 몇 날 며칠이고 타올랐다. 그 광경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는데 처음 접하는 병사들에겐 두려움과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비무장지대에 묻혀 있던 지뢰며 불발탄들이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광기어린 춤과 노래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불붙은 통나무가 화답하며 날아와 소대 막사 지붕을 박살내버린 참이었다.

이후 우리들은 툭하면 고참 쫄따구 할 것 없이 변사(辯士)가 되어, "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명식아…!"로 심심파적(心心破寂)을 일삼았던 것이다.

GOP 근무 중 겪었던, 두려웠지만 유쾌했던 에피소드의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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