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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정월 대보름을 2, 3일 앞둔 어느 날.

뒷집 살던 고추장수 아들 동만이와 외출을 하고 돌아오던 일요일 오후. 종철이네 집이 저만큼 보이는 지점에서 동만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거면 개불여쥐불여(쥐불놀이)할 때 끝내주겠는걸·"

다름 아닌 종철이네 담으로 둘러친, 잘 마른 판자 울타리를 보고 던진 말이다. 말리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동만이는 앞뒤 재지 않고 저돌적으로 판자를 뜯어냈다. 거짓말처럼 행인 하나 없던 그 길갓집 판자 뜯기는 소리가 내겐 우렛소리처럼 들렸다.

"어떤 염병할 인간덜여·"

갑자기 집안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날아왔다. 깜짝 놀란 동만이는 방금 뜯어냈던 판자를 내동댕이치고 잽싸게 도망을 가 버렸다. 나는 불안하고 겁이 났지만,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뭘!' 하고 별일 없으리라 자위하며 느릿느릿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고도 모자랄 듯 보이는 종철이 엄마는 괭이눈을 해 가지고 옥수수 대궁마냥 연약하기 짝이 없던 내 뒷덜미를 '독수리 병아리 채가 듯'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악에 받친 소리가 양철지붕에 우박 쏟아지듯 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대청이 넓었던 우리 집은 여름이면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고단한 삶의 얘기들을 풀어놓곤 했었다. 그날은 여름날도 아닌데 하필 왜 마당에 아줌마들이 그렇게 많이들 모여 있었는지? 목청이 유난히 크고 동네 싸움꾼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종철이 엄마의 거친 손길에 채여 바동거리며 아줌마들 틈바구니로 나의 몰골이 한심스럽게 떠밀려 들어갔다. 그녀는 모여 있던 아줌마들을 휘둘러보며 나의 죄를 과장하고 동의를 구했으며, 끝내는 자비를 베풀겠다고 한바탕 법석을 쳐댔다. 졸지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너절한 인간으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아, 나는 너무도 분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그때까지 배우고 익힌 욕들을 두서없이 사슬시조로 엮어내며 울부짖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그리고 목덜미가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울며 대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땡전 한 푼 없이 아픈 마음으로 징징대며 시내를 돌아다니던 그 날은 겨울비까지 내려 춥고 배가 고파서 더 이상의 방황을 지속할 수조차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동생을 찾아 돌아다니던 형이 집 앞 우물가에서 '망향가를 부르며 비틀거리던' 나를 발견하곤 짐짓 화를 내며 방으로 데려갔고, 엄마는 혀를 차며 이내 따끈한 밥을 차려주었다. 억울하고 분한 내용을 더 이상 하소연하진 않았다. 우리 식구들은 내가 소갈딱지는 지랄이라도 소심한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남의 집 판자나 뜯고 다닐 위인은 결코 못 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날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형에게 별로 힘이 실리지 않은 다섯 대의 엉덩이를 맞았다. 사납고 불운했던 일진(日辰)과 따스한 가족의 품을 행복해하면서 나는 한 번 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내 죽을 때까지 종철이 엄마는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아, 지독했던 나의 하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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