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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처음 종호가 더블 백을 메고 중대로 전입 왔을 때 우리는 모두 웃었다. 비쩍 마르고 껑충한 키에 시커먼 얼굴, 몸은 얼마나 꼿꼿한지 자칫 뒤로 넘어갈 것 같은 팔자걸음이었다. 게다가 약간은 겁먹은 듯한 무표정에 어눌한 노인네 말투까지 더하고 보면 이건 영락없는 고문관의 전형이었다.

제식훈련은 훈련소에서만 써먹고 몽땅 버리고 왔는지 동작 하나하나가 가관이었다. 한 마디로 재롱의 종합 세트인 녀석의 언행에 고참병들은 '다시, 다시!'를 연발하며 연신 종호를 들볶았다. 한데 녀석은 전혀 동요 없이 고장 난 인형처럼 계속 시키는 동작을 반복했던 것이다. 뭔가 힘들어 하거나 고통이 얼굴에 나타나야 재미가 동하는 법인데 그럴 기미라곤 애초에 없었던 듯했다. 그러잖아도 검은 얼굴이 검붉게 상기되었을 뿐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종호의 후임병들이 몇 명 나타난 뒤까지도 고참병들은 배부른 고양이가 갓 잡은 쥐를 희롱하듯 툭하면 불러댔다. 그러니 후임들조차 종호를 우습게보았고, 적당히 친구 먹자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종호가 소대원들이 존경하거나 두려워하는, 의협심 강하고 성질 급한 고참 황 병장과 우연히 휴가를 함께 다녀왔다. 귀대하는 날 자정이 다 돼서야 소대로 돌아온 황 병장은 인사불성의 만취상태였고, 종호는 말짱했지만 개천에서 금방 건져 올린 신발짝처럼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다.

"황 병장님이 쪼매 취하셔서 늦었심더"

다음날 오후 늦게 숙취가 미처 가시지도 않았을 황 병장이 종호부터 찾았다. 걱정스런 얼굴로 나타난 종호가 그 어눌한 말투로,

"쪼매 개아니껴, 황 병장님예?"

하고 물었고, 황 병장은 종호의 두 손을 끌어다가 꼭 잡고 얼핏 눈가에 물기마저 보이며

"고맙다…, 고맙다!"

를 연발할 뿐이었다.

황 병장이 휴가를 갔더니, 빚보증을 서 줬다 집을 날릴 상황에 처한 아버지와 화병(火病)으로 누운 어머니, 수긍키 어려운 이 상황을 영문 몰라 하는 동생들로 집안은 이미 초상집이었다. 숨 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서 술로만 휴가기간을 채우고 도망치듯 귀댓길에 올랐다. 차부에서 기다리던 종호를 만났지만 이대로 탈영이나 할까 싶어 술만 들이키고 있었더니, 죽은 귀신마냥 지켜만 보고 있던 종호가,

"황 병장님예, 무어 힘든 일 있으니껴? 그래도 술은 그만 드시지예. 저도 집에서 힘든 일 있을 때 술 좀 마시고 한잠 자고 나믄 개안킨 하대요. 하지만 저랑 밥좀 쪼매만 드시믄 안되니껴? 황 병장님, 휴가 가기 전보다 얼굴이 많이 안 좋심더"

하더란다.

술김에 '병신 꼴값 떨고 자빠졌네' 하며 종호를 바라본 순간, 맑고 그윽한 그 눈빛이 마치 부처님의 미소, 그것이더라는 것이다. '아아, 그래 너 같은 인간도 사는데…, 일단 제대는 하고 보자. 뭔가 길이 있을 거야!'란 생각이 깨달음처럼 오더란다.

차츰 황 병장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종호의 태도도 달라졌다. 3개월 후 황 병장이 미소를 지으며 전역할 때쯤 종호는 당당한 소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후임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어눌한 말투와 뒤로 금방 넘어갈 것 같은 걸음걸이는 끝내 못 고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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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