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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혁연 대기자

토정비결은 사주(생년·월·일·시)를 보는 주역과 달리 시(時)는 보지 않는다. 따라서 괘가 주역보다 단순한 편이다. 가령 '동풍해빙(東風解氷) 고목봉춘(枯木逢春)', 즉 '동쪽 바람에 얼음이 풀리고 마른 나무가 봄을 만났도다' 식이다.

다소의 이론이 있지만 토정비결의 저자는 대체로 조선중기 인물인 토정 이지함(1517~1578)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정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말년에 아산현감을 지냈다. 그러나 충북과도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그의 인생사 굴곡점이 충북에서 찾아왔다. 토정은 기인 이미지와 달리 이른바 명문가 출신으로, 북인의 영수였던 '이산해'가 그의 작은 아버지가 된다. 따라서 이지함은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의 후손이면서 당시 충주에 살고 있는 모산수 '이정랑'의 사위가 될 수 있었다. 즉 처가가 충주였다.

그러나 장인이 이홍윤 역모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도 이 사건의 유탄을 맞게 된다. 이른바 '이홍윤 역모사건'이다. 대윤 윤임과 사돈간으로, 조선 명종 때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충주출신 이약빙에게는 홍남, 홍윤 두 형제가 있었다. 그런데 두 형제는 전답과 노비 상속 문제로 척지는 관계가 되면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형 홍남이 동생 홍윤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면서 충주지역 선비 40~50명이 능지처참을 당하거나 귀양을 가게 된다. 명종실록에는 이홍윤을 국문하는 장면이 70번이나 등장한다.

불행하게도 이 역모사건 명단에 토정의 장인인 이정랑도 들어있었다. 결국 그도 장형을 받는 도중에 사망했다. 그런데 형 홍남이 증거로 제출한 역모사건 명단은 사실은 군사봉기 명단이 아닌, 홍윤의 계원(契員) 명단이었다. 이 사건 여파로 결혼 후 잠시나마 충주에서 처가살이 하던 토정은 고향인 충남 보령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

한 지역에서 선비 40~50명이 역모 혐의로 처형되거나 귀양을 간 것은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큰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충청도'의 도명이 '청홍도'로 바뀌었다. '충주'에서 역모가 일어났기 때문에 '충' 자를 빼고 충남 홍성의 '홍'자를 넣게 된다. 그리고 충주의 행정적 지위와 이름도 당시 '충주목'에서 사실상 두 단계 아래인 '유신현'으로 강등됐다. 이에 대해 당시 사관은 실록에 '충주 전체가 온통 비게 됐다', ' 한 집안이 도륙을 당하고 한 고을이 참화를 당했다'고 적었다.

한편 토정은 인생 말년에는 약간 관직생활을 하게 된다. 사료를 보면 토정의 형 이지번이 청풍군수로 부임할 쯤 해서 장인 이정랑의 가문이 복권되게 된다. 따라서 이지함도 이때 양반 지위를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복권된 이지함이 아산현감으로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이 '걸인청' 신설이었다.' 걸인청은 오늘날로 치면 노숙자 자활센터로, 당시 여기서는 짚신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쳤다.

이런 이지함은 그의 나이 62세인 1578년 7월 이질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이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사관은 '고을 사람들이 친척이 죽은 것처럼 슬퍼했다'고 썼다. 이율곡도 경연일기에서 '명령 내리는 것을 모두 백성 사랑 위주로 하니 백성 모두가 그를 흠모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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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