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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서

전 옥천군친환경농축산과장

혹, 옥천에 평화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청성면 화성리 석성마을 회관을 지나면 작은 다리 하나가 나온다. 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거흠 마을이란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런 골짜기에 마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외진 곳이다. 마을에 막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평화 마을이란 작은 이정표와 성모상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청성면 거포리 거흠 마을이다. 주민들은 '거큼' 이라고도 부른다.

1894년 4월, 지금부터 127년 전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청산에 머물고 있었다. 그해 가을, 추석도 지나고 가을걷이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다.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쌀쌀해진다. 이곳에 동학농민운동 전국 핵심 참모들이 다 모여들었다. 한가운데는 해월 최시형의 사위 김연국이 자리를 잡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긴장감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음력 9월 18일 전국에 총 기포령을 발령한다.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폭정과 외세침략에 항거하는 전국적인 포고령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이곳 평화마을이다.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청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한다. 10월 7일 청군이 충남 당진에 상륙하고 이를 빌미 삼아 일본군도 이틀 뒤 인천에 상륙한다. 동학군 진압 전담 부대를 조직한 일본군은 스나이더 총과 같은 신식무기를 앞세워 농민들을 대량 학살한다.

일본군과 관군 합동으로 동학의 사령탑이 있는 청산으로 집결한다, 10월 19일 청산 오리동, 현재 한곡리 문바위 마을 주변은 불바다가 된다.

토벌군의 토색질이 극에 달한다. 해월을 잡기 위해 동학 본부가 있던 청산, 보은을 이 잡듯이 뒤지며 무차별 대량 학살을 자행한다. 십 리를 가도 민가에 사람이 없고 수백 호의 집이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수많은 시체가 길거리에 방치되어 개와 새들의 먹이가 되는 생지옥이 펼쳐졌다.

1894년 말 동학농민군은 신식무기를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898년 봄, 원주에서 해월이 체포된다.

그해 7월 18일 해월 최시형을 비롯한 동학농민운동 주동자들에 대한 상소심이 대한제국 고등재판소에서 열었다. 재판장은 법무 대신 조병식이다. 배석판사 2명은 고종이 임명한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고부 군수 조병갑이다.

동학농민운동의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한 탐관오리 조병갑이 해월 최시형 재판에 판사로 임명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 재판에서 2대 교주는 해월은 사형을 언도받고 이틀 뒤 바로 교수형이 집행된다.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막힌 세상이다.

"이게 나라냐?" 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탐관오리 조병갑은 고부 민란에 책임을 지고 전라도 고금도로 유배된다. 그러나 다음 해 바로 사면복권 된다.

조병갑과 조병식은 사촌 간이다. 영의정 조두순의 조카이며 이조판서 심상훈은 사돈이다. 해월을 체포한 자가 바로 심상훈이다. 이런 든든한 배경이 있기에 유배된 지 일 년 만에 사면 복권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곳 평화 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로 가톨릭 신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한 마을주민에 의하면 20여 년 전부터 평화 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평화(平和)에 화(和)자를 보면 벼 화(禾)와 입구(口)로 이루어졌다. 평화란 먹거리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동학의 기본 사상은 평등에서부터 출발한다.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어른과 아이 등 모든 차별을 거부한다. 1894년 9월 동학농민운동 총 기포령을 내린 역사적인 이 마을을 100년이 지난 지금, 평화 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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