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0.10.14 17:27:41
  • 최종수정2020.10.14 17:27:41

경종호

충북북부보훈지청 보훈과장

지금부터 10여 년 전 선양업무를 하면서 정부기념 및 계기 행사 등 다양한 보훈 사업을 수행하던 때가 있었다.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할 수 있는 사업발굴에 대해 고민하던 중 롯데마트에서 대형태극기를 보았고 "그동안 보훈 사업을 통해 하고자 했던 것이 태극기에 함축되어 있구나. 전국 보훈청에도 대형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국기는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국민을 하나가 되게 한다.

3·1만세운동에서 손과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고 6·25전쟁 중 서울을 수복했을 때 중앙청 청사에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광복절 기념식 등 각종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의례를 식순에 넣고 있다.

하지만 요즘 '태극기 부대'라는 말을 각종 언론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데, 태극기가 일부 정치 성향의 단체나 사람들을 대표하는데 쓰이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때 태극기의 유래 및 변천 과정에 대하여 알아봄으로써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의 가치와 중요성을 되새겨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세계 각국이 국기를 제정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국가가 발전하면서부터였고 조선은 1875년 운요호 사건 이후 서양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현재 사용하는 태극기 모본은 1882년 8월 수신사 박영효가 인천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때 도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선상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일본 고베에 머무는 동안 숙소 옥상에 게양했다고 한다.

그러나 3개월 전인 1882년 5월 조선과 미국이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서 조선의 깃발이 미국 성조기와 함께 게양됐고, 그해 7월 미국에서 출간된 '해상국가들의 깃발'이란 책에서 태극기가 수록돼 있어, 이전부터 태극기의 도안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고종은 1883년 3월 6일 박영효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으나 국기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건곤감리(乾坤坎離) 사괘의 위치가 다르고 태극에 점이 들어 있거나 태극의 모양이 회오리 또는 세로로 감싸는 형상 등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됐다.

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942년 6월 29일 국기 제작법을 일치시키기 위해 '국기통일 양식'을 제정했지만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태극기가 규격화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15일 대한민국의 국기로 정식 공표된 이후다.

이와 같이 태극기는 구한말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현재까지 약 140년간 우리 민족과 항상 함께 있었고, 우리 민족을 하나가 되게 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국난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우리는 이러한 태극기의 소중한 가치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고,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