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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1.19 17:33: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천주교 청주교구 첫 쌍둥이 사제인 박동규(왼쪽), 동성 신부.

"사제가 된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함께할 동반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동반자로 그 역할을 대변하고, 그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스러운 존재라 생각합니다."

천주교 청주교구의 첫 쌍둥이 사제인 박동규(청주 서운동본당 보좌)·동성(충주 연수동본당 보좌) 신부.

형인 박동규(33) 신부는 지난 6일 음성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열린 사제(司祭) 서품식에서 사제품을 받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동생인 박동성(33) 신부 역시 사제품을 받았다. 형 보다 먼저 사제를 서품 받은 동생은 청석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대전가톨릭대에 들어가 지난 2006년 1월 사제가 됐다.

형 박동규 신부는 청주고와 충북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뒤늦게 대신학교(사제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가톨릭 학교)에 들어가 동생에 이어 3년 만에 신부가 됐다.

"가족이 모두 가톨릭신자인데, 어렸을 때부터 나누고 봉사하는 게 좋아서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을 신부라고 말했다. 신부가 목적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직자를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형제가 어렸을 때부터 느껴온 성직자의 길은 나눔과 봉사를 좀 더 많이 하는 길이였다.

이들은 다소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자손이 많은 집안 출신도 아니다. 아버지 박봉수(요셉·61)씨는 4대째 외아들로, 부인 강수월(체칠리아·60)씨와 사이에 쌍둥이 신부만 뒀다.

동생에 이어 형까지 신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지만 형제의 부모는 "잠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셨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사제로 사시게 됐으니 은총에 감사할 뿐"이라며 후원자가 됐다.

형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복사(미사 때 사제를 돕는 사람)를 했다. 이게 성소를 갖게 된 계기다. 이어 6년 동안 복사를 했고 고교 시절까지 예비신학생 모임도 함께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제의 꿈'을 이뤄 나란히 신부가 됐다.

형제의 바람은 '봉사하는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제의 꿈을 갖게 된 동기가 나눔과 봉사이기에 이를 실천할 목적이다.

이번에 사제품을 받은 박동규 신부는 "각기 모습도 개성도 다르지만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성소 계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처음에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거울삼아 늘 '온유'의 마음으로 시작과 끝이 같은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제가 되기까지는 7년의 시간이 걸린다. 대학 4년과 대학원 2년 실습 1년이란 시간을 거쳐 비로소 첫 성직자의 발을 내딛는다.

쌍둥이 사제는 "주님에게 봉헌돼 주님 안에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며 하느님을 대변하는 존재로 많은 이들을 위해 살아갈 뜻을 내비쳤다.

/ 김수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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