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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사랑하는 일은 하늘을 나는 숭고함이다. 그것은 환희다. 별처럼 휘황한 감정은 사람들이 즐겨 키우는 순수다. 사랑하는 까닭에 가슴엔 시냇물이 넘친다. 미끄러운 정서는 강을 따라 물결친다. 작은 풀벌레 움직임에도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밀물이 갯벌을 덮는 것처럼 상대에게 압도당한다. 생각은 날개를 달고 둘만의 시간을 상상한다.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둘이 걸으면 습지대도 자갈길도 황금 길이 된다.

나도 황홀한 그 도가니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쉽게 오지 않을 감정이 나를 찾아와 지배했었다. 그 일은 뇌성이나 번개처럼 예측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일어났었다. 별안간 발생하여 나를 흔들었다. 한번 발생한 감정의 산맥은 봉우리를 넘어 높이 날았다. 의지의 나무는 노예가 되어 그에게 끌려다니며 휘둘렸다. 모든 것이 정열이고 영묘했다. 열정에 의해 의지는 뿌리째 뽑혔고 깊은 못 속으로 빠져 결혼했다.

한 나무가 내나 똑같은 새싹이 없고 똑같은 이파리가 없듯, 사랑 이야기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허허벌판에서 만난 무너진 성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쓸쓸한 사랑을 하는 이도 있고, 수직 절벽을 타고 유장하게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을 하는 이도 있다. 별처럼 먼 사랑이 있는가 하면, 꽃처럼 가까이서 사랑을 하는 이도 있다.

한 부모에게서 나왔건만 나와는 다르게 큰언니는 죽음 같은 사랑을 했다. 큰언니가 그 검은 강에 빠져있을 때 나는 여섯 살이었다. 어린 내게 큰언니 이야기는 금기였다. 큰언니는 집 앞으로 지나는 경부선을 향해 뛰어들다 잡혀 오곤 했다. 어머니는 돌도 기왓장도 아닌데 왜 말을 안 하냐고 큰언니를 흔들었다. 어머니는 외출하실 때마다 날 보고 큰언니를 지키라고 했다. 나는 종일 큰언니 곁에 붙어 있었다.

어느 날 흑백사진 두 장을 큰언니가 어린 내게 보여줬다. 사진 속에 잘생긴 남자는 직장도 좋은 곳에 다닌다고 했다. 다른 사진은 사내 아기가 누워서 방울 장난감을 빨고 있었다. 누구냐고 묻자 언니는 울면서 어른들께 사진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만 했다. 나도 그냥 슬퍼서 따라서 울었다. 그랬더니 큰언니가 나를 달랬다.

시간이 못 고치는 건 없나 보다. 밥도 먹고 말도 하면서 큰언니는 검은 강에서 빠져나왔다. 사람이 사람을 치료한다고 부모님이 큰언니를 설득했고 언니는 결혼했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흑백사진 속 남자는 어쩌고, 눈이 똘방거리던 아기는 어쩌고, 기어 다니는 애들이 둘이나 딸린 사람과 결혼을 한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객지 나가 있는 큰언니가 신랑감이 보냈다면서 식구들 선물을 가지고 온 날, 부모님은 큰언니가 좋은 사람을 만났다며 기뻐하셨다. 내 선물은 분홍 줄이 세로로 있는 원피스였는데 나는 잘 때도 그 옷을 입고 잤다. 그럴 때도 있었건만 어느 날 큰언니는 아버지 손에 끌려 집으로 왔었다.

세월이 지나서 큰언니 사랑을,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다. 팔순 중반을 지나는 언니는 울지 않고 옛날 일을 말한다. 시작할 때부터 안 되는 줄 알았으나 멈출 수가 없었단다. 언니는 다시 만난 형부와 50년 넘게 서로 극진히 아껴주며 살았다. 사람이 사람을 치료하는 거라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 언니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어린 남매를 정성껏 키웠단다. 그래야만 두고 온 아기도 사랑받을 것 같았단다.

큰언니는 수년 전 형부를 먼저 보냈다. 하루는 홀로 지내는 큰언니와 사랑 이야기를 했다.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에까지 어둠이 물드는 것처럼 사랑은 심상이다. 마음에 물든 모든 사랑은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정성도 사랑이다. 정성을 다하니 사랑하게 되고 진정한 엄마가 되더란다. 사랑이 사랑을 하나 보다. 사랑하다 보니 진심이 됐고, 잘 자라 가정을 꾸린 조카들이 늙은 어미를 극진히 사랑한단다.

비가 내린다. 거리의 악사 빗소리는 누구를 위한 연주뇨. 길가에 서 있는 나무로 넌지시 눈을 돌리니 이파리들이 야단법석이다. 이 비가 그치면 금시라도 붉은 모습으로 변하여 가을사랑을 노래할 수 있노라 합창한다. 지나던 개구리 한 마리가 끼어들어 팔짝팔짝 골목을 바장댄다. 모두가 사랑이다. 어떤 사랑이든 모두가 사랑이다. 자연도 사람도 사랑 이야기뿐이다. 삶이 계속되는 동안 멈추지 않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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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