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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1.02 18:37:53
  • 최종수정2015.11.02 18:37:54

김민석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의 입구와 줄이 나뉘어 있는 비행기 탑승대기 공간 외에 계급(클래스)이란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언젠가 중국 어느 도시에 갔을 때 비행기 탑승구가 아닌 입국심사장에 퍼스트클래스 손님의 줄을 따로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중국이야말로 진정한 자본주의 국가로구나 하고 감탄한 적도 있지만 다른 나라의 공항에서 이런 경우를 본 기억은 없다. 백화점에 가도 1년에 얼마나 많은 쇼핑을 했느냐에 따라 우수고객의 대우가 달라지고, 대학에도 서열을 매기는 것이 일상화된 세상이지만 계급이란 용어가 주는 느낌은 그처럼 특별한 것이다.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넘을 수 없는 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탈북 1세대 중 잘 아는 어떤 분으로부터 자신의 가장 큰 탈북 동기가 배고픔보다는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출신성분에 따라서 갈 수 있는 대학과 진로가 정해져버리는 북한사회에 대한 절망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북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1인 독재나 경제난, 정권세습보다 사실상의 봉건적 계급질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역사는 계급과 신분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노예제나 봉건제는 그 계급적 신분질서에 저항하는 무수한 반란과 혁명을 낳았고, 결국은 사회 대다수 인구의 창조적 생산활동을 억제하는 구조의 한계 때문에 무너지고 다음 시대로 이어졌다. 자본주의는 외형상으로는 봉건적인 신분적 차별이 사라졌지만 그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적 대립구조 때문에 결국 전복될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의 예언이었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사회주의 혁명과 소비에트 체제의 수립이 이어졌지만 결국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기에 이르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철 지난 환상처럼 취급받게 된 것은 지식정보문명의 등장 등으로 사실상 종래의 자본가와 노동자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지식노동자나 중산층이 계급의 벽을 넘나드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계급이론이나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이 세계인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된 것 또한 노력에 의해 어마어마한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는 원칙은 현실의 삶과는 다르다. 한 부모에게서 나온 아이들조차 능력과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력에 의해 약점의 극복과 신분상승이 가능하고, 사회적 시스템이 그 노력을 뒷받침한다면 만인평등의 이상은 여전히 우리의 원칙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에 이르는 수저계급론이 회자된다고 한다. 타고날 때부터 운이 좋은 금수저 이야기야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금은동흙을 나눠 계급이라는 단어가 붙었다니, 어느 사회, 어느 시기에나 있을 수 있는 비관론이나 비판적 사조로 치부하거나, 왜 더 적극적 사고를 갖고 살지 않느냐고 젊음의 나약함을 나무라는 정도로 덮기에는 너무 무겁다. 계급사회는 반란으로 전복되거나 힘이 빠져 멸망해왔다. 요사이는 젊은이들을 볼 때 정말 답답하고 미안하다. 문제해결의 지혜가 부족해서 답답하고, 문제에 집중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미안하다. 가장 절박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오늘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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