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눈을 뜨고 보면, 이렇게 읽힌다. 나무는 말한다. 내가 흔들리는 까닭은 네가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아서이다. 네가 나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히 마음을 줄 때 나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새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도 읽힌다. 새는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가서 집을 짓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늘상 흔들리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에게 온전한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당신을 온전히 믿을 수 있을 때 그대 안에 들어 가리이다.
그러나 눈을 한 번 더 크게 뜨고 읽어 보면, 결국 <새와 나무>는 나무 즉 '나'로 귀결되는 시이다. '나'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근원적으로 묻는다. '나'가 우주의 중심임을 새롭게 인식시킨다. 어떤 관계든 상대의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태도가 중요한 것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흔들리지 않는 '나'가 되기 위한 구도적 자세 추구의 메시지가 저 깊은 상징의 숲에서 울려온다.
/ 권희돈 시인
새와 나무 / 류시화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