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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산중에는 봄소식이 한창이다. 무심천 주변에는 벚꽃이 이미 만개하였다는데, 이곳 산사는 도심보다 개화시기가 늦은 편이라서 꽃망울이 터질듯 한껏 부풀어 있다. 곧 눈부신 개화의 순간이 올 것 같다. 남쪽에서 전해온 화신(花信)은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뒷산 숲에는 진달래가 울긋불긋 채색하듯 피었고, 더불어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도 숲길을 화사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침마다 꽃향기 따라 산책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즐겁다. 때로는 바람결에 훈훈한 춘심(春心)이 인다. 바야흐로 세상은 한바탕 꽃 잔치의 계절이다.

어제는 등산로 초입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손수 꽃밭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영산홍과 철쭉을 심고 여러 종의 꽃씨를 묻어 놓는 솜씨로 보아서 나무를 무척 아끼시는 어른 같았다. 우리 주변에서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 세대는 대부분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그래서 동구(洞口)에 서 있는 키 큰 고목의 내력은 그 마을의 할아버지들이 식목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나무와 꽃은 할아버지가 심고 손자가 그 그늘의 음덕을 누리는 것이다.

중국의 임제선사는 나무 심는 이유를 ‘산문의 경치를 가꾸는 것이 그 첫 번째며, 뒷사람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 그 두 번째’라고 했는데, 이는 모든 독림가(篤林家)들의 마음을 대변한 말씀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를 심는 일은 어른이 몫이라 할 것이며, 젊은 후손들은 그 숲을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일본의 대우양관 선사는 나무를 가족처럼 아꼈던 인물이다. 어느 날 머물고 있는 방의 마루 밑에서 죽순이 올라와서 마룻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마루를 그만큼 잘라내어 대나무가 뻗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선사의 나무 사랑은 이 정도는 끝이 아니었다. 죽순은 점점 자라서 마침내는 천정까지 닿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 천정마저 뜯어내 대나무가 뻗어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비가 오는 날에 그 구멍으로 비가 들이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렇게 말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야! 대나무가 많이 컸구나, 많이 컸어.”

대부분 젊은 시절엔 화초를 그다지 가까이 하지 않는다. 바쁜 일상 때문에 흙을 만질 여유도 없거니와 꽃이 가진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화안(花眼)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이 들수록 모든 것이 둔해지지만 유독 꽃을 바라보는 화안은 맑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꽃과 나무을 좋아하게 되면 나이가 점점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나 또한 몇 년 전부터 꽃들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방 앞의 꽃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천으로 핀 들꽃에도 관심이 간다. 꽃나무를 만지고 가꾸는 즐거움을 비로소 알게 된 셈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절 화단에 꽃들이 풍성해지는 것도 결코 나이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근래에는 여러 종의 야생화를 심었는데 올 봄에는 그 향기가 더 만발할 것 같다. 법당 앞에 심어 놓은 돌단풍은 이미 꽃이 피었고, 제비꽃과 민들레는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한 옥잠화, 비비추, 원추리, 상사화도 하루가 다르게 꽃대가 자라고 있으며 저 멀리 수선화도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앞뜰의 해당화는 붉게 피었으며, 뒤뜰의 자목련은 이제야 벌어진다. 이처럼 수많은 꽃들이 릴레이 하듯 피고 있는 모습은 마치 별천지의 화엄세계(華嚴世界)같다. 이런 꽃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삼 생명의 경이에 감탄하고 자연의 순리에 숙연해진다. 인간사의 욕심이나 명예도 인고를 견뎌낸 개화(開花) 앞에서는 모두 부질없다. 그래서 송나라 때의 고승인 무문선사는 봄날 아침에 이렇게 노래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엔 달이 밝네. 여름엔 시원한 바람, 겨울엔 힌 눈. 부질없는 일로 가슴 졸이지 않는다면 인간세상 호시절이 바로 그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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