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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1.30 19:24: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청주지역을 넘어 충북은 물론 전국, 세계 각국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우수 공연 예술단체로 우뚝 선 청주시립무용단. 1995년 8월에 창단돼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토속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대변하는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무용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기공연과 기획·순회·해외 공연 등을 통해 한국의 문화 사절단으로써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그들 중 최고참 남자 무용수인 강민호씨와 신인 남자 무용수인 김민우씨를 만나봤다.

OLD - 청주시립무용단 16년차 남자 무용수 강민호


△국악과 트롯을 좋아하던 소년에서 무용수로

"어려서부터 서양음악보다 국악을, 가요보다 트롯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됐고 춤은 이제 제 삶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청주시립무용단 최고참 남자 무용수인 강민호(42)씨. 지난 1995년 창단 멤버로 합류해 지금까지 16년째 시립무용단원으로 활동하며 지역무용계 발전을 이끌고 있다.

그가 처음 무용을 하게 된 것은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간 것이 계기가 됐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는데 모퉁이쯤에서 낯익은 음악소리가 들려 오더라구요. 음악소리를 따라 올라가 보니 그곳이 무용학원이었어요. 처음 무용학원이란 곳을 가봤는데 무용수들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에 마음을 뺏겨 이후 수 없는 망설임과 용기 끝에 무용을 시작하게 됐어요"

△무용학원을 등록시켜 준 교회 목사님

당시만 해도 무용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그렇도 부모님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무용수라는 길. 강씨는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무용학원을 등록하게 됐다.

그리고 몇 달간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강씨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시작됐고, 이후 가족들의 응원 속에 지금의 그가 존재하게 됐다.

"당시 무용은 당장 하고 싶었는데 학원비가 제일 걱정이었어요. 집에서는 반대가 심해 학원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고 지금도 도움을 주신 목사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래서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노력했고 그때 춤을 출수 있다는 행복한 마음이 아직도 제 삶의 원천이 되고 있어요"

이런 그에게도 남자 무용수이기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학원생 모두가 여자였고 남자는 유일하게 저 혼자였거든요. 평소에도 그랬지만 학원 발표회 때 함께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게 굉장히 창피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맨 처음 무대에서 맞은 역할도 여자 역할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네요"

△춤… 열정과 감동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

"춤을 추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누군가(관객)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25년을 넘게 무용을 해왔지만 내 자신이 아닌 남에게 무용으로서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3년 전부터 40~60대 어머니들로 구성된 '서원어머니 무용단'을 만들었다. 아마추어 무용단인데 가정주부들이 대부분인 그들이 매주 자신의 수업시간을 기다리고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춤을 배우는데 강씨 자신이 더 감동을 받게 된다고 했다.

△"고목처럼 뿌리가 깊은 춤꾼 될 터"

"춤이란 제 자신에게 있어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큰 산과 같아요. 15살에 춤에 입문해서 지금껏 오로지 춤 하나만 보며 살아온 저도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니 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모진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 늘 같은 모습으로 서있는 오래된 고목처럼 뿌리가 깊은 춤꾼으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예술가로 남고 싶습니다."

강씨는 지금의 무용계는 타 장르에 비해 많은 혼란과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이는 비단 지역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전국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다. 대학에서도 점점 무용과가 사라지고 있고 무용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무용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춤이 고급 예술이기에 앞서 모두가 열정을 갖고 생활화 할 수 있도록 공연, 교육 프로그램으로 보다 생활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NEW - 청주시립무용단 2년차 남자 무용수 김민우


△가족들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시작한 무용

"삼남매 중 막내 인데, 두 분의 누님 모두 무용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늘 무용을 접하게 됐고 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무용을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청주시립무용단 2년차 무용수인 김민우(27)씨.

어린 시절부터 춤에 관심이 많았던 그도 자신이 무용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다.

충북예고를 가기 위해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했는데 그런 그에게 무용복을 착용하는 것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처음 무용을 시작했을 때는 현대무용을 했어요. 남자도 발레 타이즈를 신어야 했는데 타이즈를 입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 수업을 나가지 않은 날도 많았어요"

△관객과 소통 위해선 표현의 한계 넘어서야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14년을 춤과 함께 해 왔네요. 무용단에서는 새내기에 불과하지만 힘들게 연습한 만큼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 느끼는 보람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입니다. 춤이 제 삶에 원동력이 되고 활력소가 되는 만큼 관객들에게 보다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저 혼자만이 아닌 관객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무용수가 되도록 표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있어 무용은 영화나 연극과 같은 장르에 비해 대사가 없고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 인기가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용은 신체로 표현하는 예술인만큼 몇 배의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여러 작품 임하려면 체력관리 필수

"무용은 몸으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체력적인 문제가 가장 어려운 요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히, 남성무용수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많은데 남성무용수의 인원이 적다보니 한사람이 여러 작품을 소화해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지만 그만큼 보람이 따르기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걷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관객 메마른 정서 녹이려면 감동있는 춤 선봬야"

김씨는 지금 무용계의 현실이 메마른 사람들의 감성에 의해 낙후돼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런 속내를 드러냈다.

"무용이라는 장르가 점점 사라져가는 이 시점에 과연 무용수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어요. 그 해답은 진심이 담긴 작품을 무대에 올려 사람들의 감성을 따뜻하게 움직이는 거예요. 앞으로도 진심이 있는 춤(표현)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늘 노력하는 무용수로 남고 싶습니다."

/ 김수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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