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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깊은 산속 높은 바위 위에서 한 사람이 방랑하는 기색으로 쓸쓸히 앉아 거문고를 뜯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맑디맑은 가락이 하늘로 울려 퍼진다. 그때 한 나무꾼이 나뭇짐을 받쳐놓고 바위 뒤에 누워 쉬다 음악소리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못내 참지 못할 설움이라도 있는가. 흐르는 가락이 처연하기 그지없다. 나무꾼의 마음도 무거워진다. 장르가 바뀌며 연주자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달빛을 생각하면서 거문고 금(琴)을 뜯었다. "휘영청 달이 밝군요!" 나무꾼이 외쳤다. 연주자는 자신의 고민이 지나치고 여러 날 시름에 젖다보니 환청인가 하면서 줄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는 드넓은 바다를 연상하며 아끼는 자신의 수작 수선조(水仙操)를 뜯었다. "도도한 파도가 바람에 휘말려 넘실거리며 흘러가는군요!" 하는 것이 아닌가. 하도 신기하여 이번에는 자신의 금곡(琴曲)인 천풍조(天風操)를 뜯었다. "장엄하고 아름답기가 그지없군요. 가슴속에는 해와 달을 거두어들이고 발아래는 무수한 별 무리를 밟고서 서 있군요. 높으나 높은 상상봉에 의연하고 도저하게 서 있군요" 하는 거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줌에 감격한 그는 나무꾼에게 다가가 의형제를 맺었다.

여씨춘추에 나오는 작가·연대미상의 '백아와 종자기'설화를 각색해 보았다. 그 후두 사람 간에 깊은 영혼의 교류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다가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상실감에 빠진 백아는 무덤 앞에서 마지막 곡을 연주한 뒤,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곤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백아절현(伯牙絶絃)이란 고사가 생긴 유래이고, 서로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일컬어 지음(知音)이란 말을 쓴다.

음악을 아는 참된 경지에 올라 연주자와 하나가 되어 교감하던 '종자기'는 글을 깨우친 지식인이었을까? 나무꾼으로 등장하니 학식이나 명예 같은 건 얻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백아는 거문고 타는 실력이 얼마나 탁월한지 금(琴)소리가 퍼지니 풀을 뜯던 말 여섯 필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듣더라는 기록이 있고, 봉작이란 작위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신분을 넘어 진실한 지음의 정을 나누었다.

종자기를 만나기 전 그는 최악이었지 싶다. 자신을 키워 준 스승의 죽음으로 빠진 상실감, 자신의 음악 실력을 알아주지 않는 현실, 관료들과 놀아나는 기생들의 음악이 판을 치는 시국에 화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하니, 그 쓸쓸함이 짐작된다.

강을 따라 배를 저어가는 그를 상상해보자. 언덕위엔 가랑잎지고, 갈대꽃이 만발하니 고독한 나그네 수심에 젖누나. 그러나 종자기를 만난 뒤, 적막한 강기슭의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사람으로 인해 행복하여라. 꽃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꽃을 말했고 동물을 생각하면 동물을 말하니, 하늘이 내린 지음관계 아닌가. 어찌 더 이상 주고받을 말이 필요할까. 서로를 느끼고 교감하는 오직 한 사람을 만났으니….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사람, 우리는 자신을 알아주는 그 한사람으로 인하여 삶의 의미를 찾고, 그로 인하여 빈 가슴을 채운다. "그대의 가슴에 떠오르는 것은, 곧 내 마음 그대로일세. 그대 앞에서 거문고를 켜면, 금(琴)처럼 진동하는 내 맘을 숨길 수가 없다네." 우리가 백아라도 이렇게 말할법하잖은가. 옛사람 그들은 동성이었을까? 백아가 지극히 마음을 주었던 '종자기'는 나무꾼이니 남성이라해도, 백아는 기품 있는 기녀였을 거라 주장하는 설도 있어 마음이 끌린다.

말이 필요 없는, 연인보다 깊은 사이, 마음을 담아 걱정해주며 바라만보는 사이, 진실한 눈빛만으로도 고단한 마음이 녹아지는 그런 사람 하나 곁에 있는가· 같은 땅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며 그리운 사람, 서로의 지음이 되어 어느덧 서로의 약점까지 사랑하게 되고…. 거문고를 닮은 그 어떤 매개로 연결돼 지음이 되는 그 한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매일매일 충만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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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