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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나는 차가 두 대다. 하나는 2000년식 카렌스고 다른 하나는 1999년식 EF 소나타다. 우리 딸은 카렌스를 카레라고 하고 소나타를 소라고 부른다. 나는 두 차 모두 똥차라고 부른다. 카레를 타고 자유로를 시속 100Km로 달리는 중에 시동이 꺼져 버렸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삼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 뒤로 카레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차를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더니 세상 대부분의 아내들이 그렇듯이 내 아내도 흔쾌히 그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차를 산지 몇 년이나 됐다고 벌써 바꾸려 하느냐로 시작해서 내가 차 좀 태워달라고 할 때 시원스럽게 그러마고 한 적이 있느냐를 거쳐서 정 그렇다면 애들 외할아버지가 타던 차가 놀고 있으니 그걸 타면 된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카레보다 더 연로한 차를 어떻게 타느냐는 말은 입 밖에 내보지도 못했다. 차를 뽑은 지는 조금 됐지만 애들 외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해서 속은 멀쩡하다느니, 지금까지 나온 국산차 중에는 그만큼 세련된 디자인을 찾아볼 수 없다느니, 게다가 사고는 물론 고장 한번 없었다느니 하면서 소가 정말로 괜찮은 차라는 것에 내가 동의할 때까지 입을 닫지 않을 기세였다. 아내는 내게 언질도 없이 중고차 딜러로 직업을 바꾼 게 분명하다. 이 유능한 딜러에 의해서 소는 2012년형 BMW 528i보다 더 그럴듯한 차가 되어 버렸다. 아내가 소를 적극 추천한 이유는 딱 하나다. 공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똥차만 두 대를 굴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영화 <그랜 토리노>에도 오래된 차가 등장한다. 포드사에서 1972년에 나온 그랜 토리노가 바로 그녀석이다. 이 차의 나이는 마흔이 다 되어가지만 새 차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랜 토리노에 비하면 카레나 소는 열 살을 겨우 넘긴 어린애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어린 나이인데도 내 차를 보고 있으면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를 보는 듯하다. 운전을 해 보면 느낌이 더 분명해진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들다. 언제 어디서 쓰러져 버릴 지 알 수 없다.

그랜 토리노는 내 차와 달리 빈티지라 불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멋있어진다. 마치 오드리 헵번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는 듯하다. 젊을 때는 누구나 아름답다. 새 차가 신선한 외모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듯이. 그래서 사람들은 새 차에 눈독을 들이는 거고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고 용을 쓰는 거다. 그렇지만 차도 사람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세월과 싸워서 참패하고 싶지 않다면 젊음을 유지하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거나.

박완서는 노년이 되었을 때 노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을 여러 편 썼다. 노년의 지혜로움이 느껴지는 소설은 이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노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젊은 시절의 실수와 상처, 고통마저도 아름답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젊음이 그렇듯이 중년이나 노년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사람이든 차든 세월이 가면 주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름답게 주름이 지기는 쉽지 않다. 아름다운 주름은 젊은이들의 매끄러운 피부보다 더 아름답다고는 말 못해도 더 고귀한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에서 나온 유명한 요리 만화 <맛의 달인>에 보면 젊은 주인공들은 유행하는 옷을 입고 새로 출시된 차를 몬다. 나이 든 주인공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빈티지 차를 탄다. 일본에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들이 실제로 그런 문화생활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이에 맞게 옷을 입고 차를 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차가 이동수단일 뿐이라면 내 능력에 맞는 차를 고르면 되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미 차는 주인의 얼굴이자 인격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을 것, 디자인이 튀지도, 촌스럽지도 않을 것, 승차감과 가속력과 연비가 좋을 것, 잔고장이 없고 수리비도 적게 나올 것, 가격도 적당할 것, 이것이 내가 원하는 차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다. 그랜 토리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애착이 가는 차를 그에 어울리는 새 주인에게 입양 보내려는 분이 있으면 언제라도 좋으니 연락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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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