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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몇 해 전 개량한복을 입고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공예분야로 특화된 미술관인 한국공예관의 성격과도 부합되고 방문객들에게 우리 문화의 친숙한 이미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직원 모두가 개량한복을 단체 주문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의지와 실천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새롭고 신선하며 한국적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통한복에서 느낄 수 있는 멋스러움과 꾸밈의 미학을 발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개량한복은 전통한복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흉내만 내다보니 되레 국적불명의 의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여론이 썩 좋지 않고 생전 처음 입어보는 불편함도 견딜 수 없어 직원들의 거사는 씁쓸한 여운만 남긴 채 막을 내려야 했다.

한복은 자연을 담은 예술품이자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운 우리의 옷이다. 혼례복에서부터 우아함이 돋보이는 궁중복에 이르기까지 오색창연한 한복의 향연은 한 폭의 동양화요, 자연의 미학이며, 우리 민족 특유의 얼과 매력을 담은 살아있는 예술이다. 하여, 한복은 한국인의 삶과 지혜를 담은 문화의 창이자 선과 색과 결이 조화로운 정중동의 심미안이며 패션 아이콘이다. 한국의 오방색과 자연미를 담고 선과 곡선으로 아름다움과 정숙미를 더했으며, 인간의 열망과 멋을 꾸미고 실용성과 예술성을 감쌌기에 옷이 아니라 정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몸의 곡선을 따라 꼭 맞게 마름질해 재봉질 하는 입체적인 서양 옷과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소재와 기능, 디자인과 품격이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옷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자연에서 식물의 속대와 겉껍질 또는 누에고치의 실을 이용해 옷을 만들거나 천연염색을 하기 때문에 숨쉬는 옷이다. 또한 겨울에는 추위로부터 따뜻하게 보호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통풍이 잘되게 만들었으니 자연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폼이 여유롭고 넉넉하게 짓기 때문에 입고 다니기 편안하며 상체는 차게, 하체는 따뜻하게 하는 기능성을 갖고 있어 건강과 멋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매력 포인트라 할 것이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옷이 예술로, 디자인으로, 패션으로, 문화상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으니 한국인의 끝없는 욕망과 열정과 생각의 탄생과 창조적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옛 서울역에서 열린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한복패션쇼를 보면서도 이 같은 생각을 했다. 무대 위의 한복은 자칫 고루하고 무모한 모험이자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는 나만의 생각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 오방색 조각보를 활용한 디자인, 금관·족두리·떨잠 등을 응용한 장식의 미, 선과 곡선이 주는 여유로움과 어울림…. 아, 그날 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멋과 미, 역사와 철학까지 담고 있는 한복이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최고의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 밤잠을 설쳐야 했다. 그 멋과 아름다움의 비밀번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오래 지속됐다.

요즘 청주에 한복바람이 불고 있다. 이것이 잠시 왔다 스쳐가는 유행이 아니라 삶과 현실이 되기를 소망한다. 늘 그렇듯이 바람이 잔잔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며 번잡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영혼을 울리고,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변화와 혁신의 큰 바람이 되면 좋겠다. 한복이 21세기 새로운 디자인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마당에 한복의 기능성과 디자인과 장식품을 응용해 다채로운 문화상품을 개발하면 어떨까. 손가방, 거울, 수첩, 연필꽂이 등의 생활소품에서부터 이불, 베개, 식탁 등 라이프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조각보를 활용한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개척하는 것에서부터 첨단 제품과 응용과학의 접목에 이르기까지 한복의 정신이 담긴 글로벌 상품을 만들면 좋겠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가까이 함으로써 우리 고유의 정신적 흐름과 정체성을 경험해야 한다. 움직이는 언어, 물결치는 예술, 하나되는 미래를 다함께 공유하면 더 바랄게 없다. 국경과 인종과 시공을 뛰어넘는 글로벌 퍼포먼스를 즐기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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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