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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6.22 14:19:2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김승환

충북대 교수·충북문화예술연구소장

1974년 6월이었다. 속리산고속이 청주 시내에 있기는 했으나 기차를 이용할 때는 시내버스를 타고 조치원역으로 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학기말 고사를 끝내고 서울에 가려던 나는 중봉리 다리 건너 어떤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할아버지는 강태공의 도인(道人)다운 자세로 묵묵히 초록색 석유병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가 저런 곳에서 석유를 판단 말인가·' 철없는 책상물림인 나는 그 할아버지의 연극배우 같은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웬일인지 오랜 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 의문이 풀린 것은 대략 십년 전의 일이다. 어느날 적십자 충북지사의 김영회 회장께서 당시 충청일보 편집국장으로 부임한 직후의 일화(逸話)를 소개하는 자리에서였다. 언제나 신사와 선비의 풍모를 잃지 않는 김회장께서, 언제나 중용과 보편의 덕망을 놓지 않는 박영수 수필가와 파안으로 담소를 나누는 저녁 시간이었다. 대성학원의 역사가 나왔고 박영수 전 청주문화원장께서 전임 총장들의 빛나는 치적을 회고하고 나자 김영회 회장께서 중봉리 다리에서 석유를 팔던 할아버지를 회상하는 것이 아닌가! 존경과 경외를 담은 회고와 회상이었다.

나의 숨은 저절로 잦아들었고 오래 잊히지 않던 숙제 하나를 풀었다는 찬탄이 터져나왔다. 바로 그 할아버지가 대성학원 설립자 중의 한 분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석유 장사는 이윤이 남을 리도 없고 또 1974년이면 근대화로 인하여 생활방식이 달라졌으므로 석유의 효용가치는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구부정한 자세로 깊은 연륜(年輪)을 이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왜 1974년에 석유를 팔아야 했던가! 그것은 교육입국을 위한 거룩한 행위로써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문제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우라(aura)의 기품을 보여주신 그 할아버지의 그 모습은 철학, 즉 깊이 생각하는 힘이 만든 한 편의 걸작이다. 오늘의 대성학원에 관련된 모든 분은 당연히 그 할아버지의 깊은 사유가 낳은 선(善)의 결과라고 해야 한다.

선대의 숭고한 사상을 이어받은 분 중에 김윤배 청주대학교 총장이 있다. 그간 김총장께서는 설립자인 김원근, 김영근 옹의 높은 정신과 전임 총장들의 깊은 유지를 이어받은 대성학원의 주체로서 청주대학교를 잘 이끌어 왔다. 훌륭한 일과 좋은 일에 대해서는 수많은 상찬이 있었고 경향(京鄕)에 알려져 있으므로 줄이기로 하고 문제가 되는 일 하나만 논의하기로 한다. 그것은 바로 김준철 전 총장께서 개설한 철학과를 김윤배 총장이 폐과(廢科)하려 하는 일대 사건이다. 일언이폐지하고 말하면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청주대학교를 비롯한 대성학원은 한 가문(家門)의 역사를 넘어서는 충북사회의 상징이자 초석이 아닌가!

사르트르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바꾸어 '과거에 내가 존재했었으므로 지금 나는 생각한다.'라고 선언했다. 일찍이 근대철학의 기틀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데카르트는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을 남겨서 인간의 자기반성과 근대의 합리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까 사르트르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 즉 살아있는 것은 과거에 나를 포함한 무엇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표현을 했다. 이것을 명제논리로 바꾸면 '모든 사람은 생각하는 힘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철학과를 폐과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모든 학과가 없어지더라도 최후에 남아야 하는 것이 철학과다. 더구나 청주대학교와 같은 유서 깊은 명문 사학에서 학생이 없다는 등 그 어떤 이유라고 하더라도 철학과 폐과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또한 한수(漢水) 이남 최고 명문사학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유로 철학과를 폐지한다는 것은 청주대학교의 문을 닫는 것과 같은 일이고, 김총장께서 대학을 회사 경영으로 간주한다는 증거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철학과는 존속시켜야 한다. 수천억의 비축자금은 한의대 신설이나 외국학생 유치가 아닌 이런 일에 쓰라고 있지 않겠는가. 거듭 강조하거니와 김윤배 총장의 존재는 사유하는 힘, 즉 철학에서 나오는 것인즉 다른 논변(論辯)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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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