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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4.06 18:13:2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메일의 시작은 항상 이런 식이다. '교수님 한 학기 동안 강의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대학 와서 들어본 강의 중에서 교수님 강의보다 더 알차고 도움이 되는 강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메일의 뒷부분은 이렇게 끝나곤 한다.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제 학점을 조금만 올려주신다면 교수님의 은혜를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학점 평균 3.5를 넘기는 것을 원하는 학생이나 학사경고를 면하기를 바라는 학생이나 내가 선처해 주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자기 나름대로 애달픈 사연이 있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답 메일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강의를 열심히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들어줄 때면 저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메일의 뒷부분은 이렇게 끝맺는다. '학생의 딱한 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학점은 구걸의 대상이 아닙니다. 개인사정을 이유로 들어서 학점을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더 높은 수능 성적이 필요하니 점수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이런 원칙을 매번 끝까지 밀고나갈 수 있을 만큼 매정한 인간은 되지 못한다. 헛된 기대를 하며 메일을 보내는 학생들의 수를 줄여볼 요량으로 종강 무렵이면 '성공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는 괴테의 명언을 살짝 바꿔서 '학점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고 말해주곤 한다. 학생들에게 학점을 부여하는 것은 교수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모든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한다. 그런데 가르치는 것과 평가하는 것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다른 일이다. 가르치는 것은 잘만 하면 배우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평가를 아무리 잘 한다 하더라도 평가 받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대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소수를 제외하면 모두가 불만이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면,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가르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입었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평가를 받은 사람은 평가한 사람을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

만족할만한 평가를 받은 사람에게는 평가가 상으로서의 의미가 강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평가는 벌인 셈이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마음 상해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운 좋게도 좋은 성적을 받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게으른데다가 머리까지 나쁜 인간이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해 보시라. 사람들이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를 꺼리는 것은 학생이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평가받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우리 안방극장에는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고 있다. 나도 딸내미 어깨 너머로 그런 프로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심사위원들이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독설을 퍼붓는 것도 내 상식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웠으며, 어떤 모욕도 감수하고 오디션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하는 참가자들의 자세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침을 받는 사람보다 많은 권력을 지니고 있어서 가르치는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에도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쉽게 상처 입는다. 그래서 가르칠 때는 배우는 사람에게 가르치려는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았다고 여기게끔 가르쳐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오디션 참가자들을 나무라고 야단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을 심사위원의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수준이 아직 이것밖에 안되는가 싶어서 서글퍼진다. 가르치는 것도 이러니 평가하는 것은 오죽하겠는가. 오디션 참가자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한 명 한 명 호명하면서 합격과 불합격을 통보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당사자가 아닌데도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

가르침을 통하지 않고는 개인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할 수 없고, 평가를 하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할 수 없다. 교육과 평가는 어느 사회에서도 필요한데,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교육이나 더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섬세한 교육과 평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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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