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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며칠 전 갑자기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 하여 주말에 잠깐 찾아뵙고 왔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내내 무겁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연세 탓인지, 어머니는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 두 차례 입원을 하신다. 그때마다 돌보시는 아버지의 고생이 여간 아닌데, 좁고 딱딱한 보조 침대에서 새우잠을 청하시는 모습과 탁한 병실 안의 공기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간병인을 두라 하여도 굳이 아버지께서 직접 병간호를 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시고, 또한 좀더 넓은 병실로 가자고 하여도 싫다 하신다. 좁은 병실 안이 답답하실 만도 한데, 함께 입원하고 있는 병실 맞은편의 노부부와 서로 말동무가 되고 있는 듯 하여 지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병문안 차 내려간 길에 아들이 오랜만에 어머니 옆을 지키겠다고 말씀을 드려도 귀찮다 하시며 어머니는 웃으신다. '늙어서까지도 뭐가 그리 좋냐'며 농을 건네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훨씬 편하다고 하시며, 아버지 역시 싫은 내색 없이 내내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는다. 늙으면 자식도 필요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말인가. 여하튼 모난 일 없이 사십년을 넘도록 오랜 시간을 두 분이 서로 옆에서 지켜주시는 모습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시간이 지나 저녁때가 다가와 아버지를 모시고 식당을 가게 되었다.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맛있는 저녁을 사드리고자 여쭈어 보았는데, 칼국수가 드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원래 면 종류를 좋아하시는데, 고기를 잡수시러 가자고 말씀을 드려도 이가 좋지 못하다고 하시며 극구 사양하셨다. 아마 아들 녀석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명한 칼국수 집으로 가게 되었고, 다소 시장하셨는지 칼국수 국물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옆으로 연신 불어내시며 맛있게 드셨다. 평소보다도 많이 드시는 것 같아 탈이 나시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였으나, 입맛에 맞으셨는지 매우 흡족해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흡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께서는 칼국수를 잡수시는 내내 맛있다고 하시며, 퇴원하는 날 이곳으로 다시 찾아와 어머니도 한 그릇 사주어야겠다는 말을 계속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중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원래 머리숱이 많으셨는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얼마 남지 않은 채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과 깊어지는 굵은 주름을 보며 잠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굵은 주름살은 어머니의 바가지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되는데,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게 되니 갑자기 눈 가가 붉어졌다.

고향도 아닌 곳에서 어머니를 만나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신 아버지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우리 가족의 뒷바라지야 어머니도 두말할 나위 없겠지만, 여하튼 두 분이 이렇게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며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보면 새삼 느끼는 바 크다. 이는 아마도 모든 부모님의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간혹 주변에서 은혼식, 금혼식이라 하여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오래된 노부부를 위해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베풀어 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굳이 그런 행사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의 삶 자체를 곧게 생각해보고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아마도 그런 내면에는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그러나 서로 존중과 배려 없이 계속 반복되는 불신만 쌓여간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한 가족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가정, 특히 부부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보면 아이들도 따라할 것이고, 가정이 더 화목해질 것이다.

요즘 들어 이런 저런 사소한 일로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잦아지는 나의 모습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경처가나 애처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말아야지 싶다.

돌아오는 길, 계속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날이 골이 깊어지는 주름살로 비록 피곤한 모습을 숨길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웃으시며 어머니의 평생 동무가 되어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귀갓길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늘도 주섬주섬 펼쳐놓은 일거리를 정리하며, 마음은 벌써 집으로 향해 본다.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와 커피 한잔 나누어야겠다. 그리고 진한 커피 향에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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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