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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외솔회 회장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36 년 간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우리 민족의 얼과 말까지 말살하려 했다. 이를 이룰 수 없도록 끝까지 그들에게 맞섰던 이들 중에는 국어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글이 목숨'이라는 정신으로 우리말과 글, 그리고 얼을 지키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갈고 다듬고, 사전을 만들고,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 언중들에게 보급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광복 후에 새로 찾은 나라에서 처음 만든 교과서들은 그런 정신이 남아 있어, 많은 술어들이 우리의 토박이말들로 되어 있었다. 예컨대 국민학교에서는 '산수'가 아니라, '셈본'을 배웠으며, '문법'책만이 아니라 '말본'책도 가르쳤다. '셈본'에서는 '세모꼴, 네모꼴, 마름모꼴, 사다리꼴, 원의 둘레, 원의 높이'와 같은 말들이 쓰였고, '말본'책에서는 '이름씨, 대이름씨, 셈씨, 닿소리, 홀소리, 마침표, 물음표, 따옴표' 등의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런데 1960년 이후에 '셈본'은 슬그머니 없어지고 '산수'로 바뀌더니, 술어도 '삼각형, 사각형, 원주율' 등의 한자어가 등장하였다. 그 이유는 치열해진 대학 입시에 편승하여, 같은 길을 걷던 일본의 참고서들을 그대로 번역하다 보니 생긴 병폐였다. 원문 그대로 베끼는 것이 새로 우리말로 바꾸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었다.

'말본'책도 '문법'책과 나란히 잘 쓰이던 것이 1963년, 당시 문교부에서 주관한 '학교 문법 통일을 위한 전문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통사론'에 관한 용어만은 한자어로 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름씨' 대신에 '명사', '셈씨' 대신에 '수사'가 쓰이게 된 것이다. 다만 '소리'에 관한 것, 즉 '닿소리, 홀소리, 입천장소리, 예사소리, 된소리' 등과 문장부호, 즉 '마침표, 쉼표, 물음표, 느낌표' 등은 고유어로 쓰기로 했기 때문에 형평성이나 통일성, 효용성에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컴퓨터나 손전화 같은 전자 기기가 발달하다 보니, 한자보다는 한글이 훨씬 쓰기 쉽게 되었고, 어려운 한자 용어보다는 순수한 우리말이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예컨대 '명사'는 사전에서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라고 되어 있으니, 한 번에 '이름씨'라고 하면 알 수 있는 것을 구태여 사전을 찾아야만 그 뜻을 알 수 있으니, 참 번거롭고 비경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용어들이 일본식 말이라는 것을 알고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 말들을 쓰자고 한 사람들이 대개는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일본인들에게서 배운 사람들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참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그렇게 배우면, 당연히 그것만이 옳고 쉽다고 생각한다. 즉 일본식으로 배운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 된 역사의 산물이며, 우리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라고 한자식으로 된 말이 쉽고, 그들의 언어에 적합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즉 그들이 옛날에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문화적으로 뒤떨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한자식 말로 쓰다가 굳어졌을 뿐이다.

요즘 100년 전의 '한ㆍ일 병합'이 강제였다, 거짓이었다고 야단이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본을 따라잡거나 앞설 수 있게 되었다고 큰소리치면서, 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일본어 잔재는 버리려 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우리 것이 없어서 그렇다면 또 모르지만, 버젓이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 그런다는 것은 아무래도 친일의 끄나풀이 남았기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새로 만드는 교과서들에서는 그런 족보에도 없고, 시대적 요구에도 맞지 않는, 한자식ㆍ일본식ㆍ사대주의식 용어들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맞는 태도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교과서에서 쓰이고 있는 용어들을 점검해 보고, 순수하며 적합한 토박이말로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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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