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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의 긴 탁자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본래 사랑방이란 주인이 늘 거처하면서 손님, 주로 문객(文客)들을 맞이하여 대화를 나누던 공간이다. 그렇지만 현대적인 의미로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즐기는 곳으로 이해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좁은 공간이지만 이 자리는 점심 식사 후 차 한 잔과 함께 무료함도 달래고 친목 도모를 위해 아주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선뜻 자리를 함께 하기 어려웠던 분들도 사무실 밖으로 퍼지는 이야기 소리에 간혹 찾아오시곤 하는데, 이 시간만큼은 내내 웃음과 자유스러움이 가득하다.

화제는 학술적인 내용에서 일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여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다루어지며, 때론 인생 선배님들과 동료들의 추억, 경험, 삶 이야기 등이 나름 생활의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하루는 먹을거리 이야기를 하다가 도토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도토리 키 재기', '개밥에 도토리' 등 옛 속담의 내용이 그다지 긍정적인 것 같지 않으며, 다람쥐 같은 설치류가 주로 먹는 것으로 인식되어 도토리를 하찮게 보거나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도토리가 사람들의 식량자원이었다는 사실과 요즘 누리망의 한 사이트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이버 머니의 이름이 도토리라는 점은 우리가 잘 모르던 도토리의 또 다른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동의보감》에는 도토리의 효능을 '맛이 쓰고 떫으나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없으며, 설사와 이질 등을 낫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여 몸에 살을 오르게 한다'고 하였다. 민간에서도 도토리로 만든 음식이 소화가 잘 되고, 지혈작용과 몸 안에 쌓이는 중금속을 제거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에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 도토리만큼이나 매우 유익한 식물은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도토리는 예로부터 가뭄 또는 흉작에 의해 먹을 것이 귀하거나 쌀과 보리 등의 주식을 대체할 때 주로 사용되던 대표적인 구황 양식이었다. 《본초강목》을 비롯한 옛 문헌은 나라에서 도토리나무를 심는 것을 장려하거나 도토리의 비축을 권장하는 내용 등이 있어 우리 조상들의 귀중한 식량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지금처럼 묵이나 수제비, 부침개 등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신석기시대 유적인 서울 암사동과 충주 조동리, 창녕 비봉리유적 등에서 도토리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창녕 비봉리유적의 도토리 저장구덩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도토리가 사람들의 주된 먹을거리로 이용되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도토리는 '탄닌'이라는 성분으로 떫은맛이 있는데, 이 떫은맛은 물에 불리거나 담가 두면 없어진다고 한다. 선사시대 사람들 역시 이러한 원리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도토리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갈판에 갈아 가루로 만든 다음 물에 불려서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하튼 선사시대부터 도토리를 식량으로 선택한 옛 사람들이 지혜가 놀랍기만 하며, 크기는 작지만 그동안 여러모로 우리 사람에게 유용함을 안겨주었던 도토리가 고맙게만 느껴진다.

어릴 적 학교 가는 길의 나지막한 야산에는 도토리나무가 많아 등하교길 틈틈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주워 가방에 넣어오곤 하였다. 그렇게 주워온 도토리를 소쿠리에 모아 묵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뜩 떠오르는데, 뜨거운 열기 속에서 정성스레 묵을 쓰시던 어머니의 땀방울 때문인지 쫄깃쫄깃했던 옛 맛의 기억이 새롭다.

때때로 아파트 단지 내 일주일에 한 번 씩 서는 장터의 도토리 음식을 사 먹기도 하는데, 예전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맛이 나질 않는다. 수입산 재료에 행여나 알 수 없는 첨가물 등이 들어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우 때문인지 그 맛도 한층 떨어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조상들이 먹었던 자연 그대로의 도토리야 말로 무공해이자 유기농 식품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웃으면서 해본다.

무더워지는 날씨 입맛도 나질 않고, 시원한 도토리묵 밥이 그리워진다. 이번 주말 따뜻한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가까운 시골로 도토리묵 밥 한 그릇 먹어보러 가야겠다.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알찬 도토리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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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