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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5.03 19:16:3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전인 선조 22년(1589) 비변사의 대신들은 각자 무신들을 추천한다.

능력있는 무신들을 적재적소에 배치, 국방력을 다지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임진왜란에 대한 대비책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이때 대신 윤탁연(尹卓然, 1538~1594)은 이종장(李宗張·?~1592)을 추천했다.
 
이런 흐름 속에 조선 조정은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에 황윤길과 김성일을 통신사 정사와 부사로 보내, 일본을 정탐케 한다. 그러나 둘이 귀국해 올린 보고서 내용은 정반대였다. 서인 황윤길은 "장차 일본이 반드시 침략할 것임으로 대배해야 한다"고 보고를 했다. 반면 동인 김성일은 "일본은 침략할 능력이 없다"는 내용을 올렸다. 당시 조정은 동인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따라서 서인인 황윤길의 의견은 묵살됐다.
 
당시 서인들은 이른바 '세자건저' 사건으로 정치적 수세에 몰려있었다. 따라서 선조는 서인이 전쟁의 위험성을 과장, 동인의 공격을 막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봤다. '건저'(建儲)는 왕의 자리를 계승할 왕세자를 정하는 일을 말한다. 이때 서인은 광해군을 세자로 추천했다가 선조의 미움을 받아 정철 등이 대거 귀양을 가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선조는 광해군이 아닌 신성군을 생각하고 있었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조정은 신립을 도순변사, 김여물을 종사관 그리고 이종장을 충주목사겸 조방장(忠州牧使兼助防將)으로 임명했다. 서두에 언급한 이종장이 탄금대 전투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조방장은 장수 바로 밑에서 보필 역할을 하는 장교를 말한다.
 
신립은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당시 신립과 친한 군관이 "적이 벌써 조령을 넘었다"고 보고를 한다. 그러자 신립은 "망령된 말"이라고 하여 그 자리에서 그 군관의 목을 베어, 군기가 엄정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지휘체계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달 27일에 적이 이미 조령을 넘어 단월역에 이르렀는데, 목사 이종장과 이일이 모두 척후로 전방에 있다가 적에게 차단당하여 정세 보고가 단절되었으므로 신립이 또 알지 못하였다'.
 
이종장은 탄금대 배수진 작전의 불가함을 종사관 김여물과 함께 신립에게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신립과 그의 종사관 김여물은 패배가 확실해지자 달천강에 투신, 함께 자살한다. 그러나 이종장은 자살하지 않고 최후까지 싸우다 같은 날 왜군에게 희생됐다. 그것도 아들 희립과 함께 죽었다. 따라서 임진왜란 탄금대 전투를 논할 때 신립, 김여물, 이종장은 이른바 '세트'로 다뤄진다.
 '
영의정 심순택이 아뢰기를, 고(故) 순변사 신립, 고 종사관 김여물, 고 목사 이종장은 전쟁 터인 충주 달천에 같이 희생된 장사들과 함께 제사를 내렸습니다. 오래도록 잊지 않는 뜻과 충성에 보답하고 절개를 장려하는 훌륭한 덕에 대해 참으로 흠모하여 마지 않는데 내년은 바로 옛날의 그 해입니다. 전례대로 내년 봄에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내용으로, 이때의 '내년'은 세 사람이 탄금대 전투에서 함께 죽은지 300년(1892)이 되는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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