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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4.12 19:20: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신라장적(新羅帳籍)은 1933년 일본 황실 유물 창고인 정창원에서 고려불경 화엄경론을 수리하던중 우연히 발견됐다. 특히 신라장적은 통일신라시대의 서원경, 즉 지금의 청주 일대를 조사 대상으로 한 촌락 문서여서 더욱 애착이 가고 있다.

신라장적에는 서원경 일대 4개 촌락이 등장한다. 이중 지명 사해점촌(沙害漸村)과 살하지촌(薩下知村)은 유관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나머지 1개는 '서원경 직속의 OOO촌' 정도만 쓰여 있고, 또 다른 지명은 그 부분이 멸실됐기 때문에 촌락명을 전혀 알 수 없다. 이중 '서원경 직속 OOO'촌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촌락 위치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일부 학자는 지금의 청주시 외곽인 연기군이나 내수읍 초정 정도로 보고 있다. 반면 또 다른 학자는 당시 1개 촌이 지금의 1개 면 정도가 된다고 가정, 지금의 청주시내 어느 곳 쯤으로 비정하고 있다.

신라장적은 인문지리적인 요소 외에 통계학적으로도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4개 촌의 통계를 합산한 결과, 당시 4개 촌락에는 총 462명이 생존했다. 이중 양인 즉 평민이 437명, 노비가 25명 가량이었다. 보다 면밀히 분석한 결과, 당시 노비는 인간적인 권리와 의무를 모두 갖지 않았다. 즉 토지, 가옥을 소유하지 못했고 대신 주인의 사유물로 간주됐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노비의 수명이 다소 짧았다는 점이다. 이는 고된 노역과 혹사의 결과로 보여지고 있다. 노비가 농업 생산력의 말단 주체였다는 점은 정남과의 숫자 비교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정남(丁男)은 노동을 할 수 있는 16~60살의 남성을 말한다.

관찰 결과, 정남이 많은 촌락에서는 노비의 숫자가 매우 적었다. 이는 정남이 있기 때문에 노비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어느 촌락의 경우 노비는 한 명도 없었으나 소(牛)의 숫자는 매우 많았다. 이는 소를 통해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비 소유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동수단인 말(馬)은 노동력과는 무관했다.

남녀 성비는 남자 194명, 여자 243명으로 여자가 49명 가량 많았다. 여기에도 나름의 사연이 존재하고 있다. 당시 성인 남성은 부역 외에 병역의 의무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조사 당시 장기 부재자가 많았음을 의미하고, 이것이 통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비교적 단명 하는 점이 통계에 반영됐다는 주장도 있다.

신라장적은 어문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고유인'(古有人), '좌내연'(坐內烟), '회거연'(廻去烟) 등 이두식 표현이 상당히 등장한다. 이중 '고유인'은 예부터 있던 사람, '좌내연'은 새로 이사온 사람, '회거연'은 이사간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학자들의 이같은 분석은 신라장적이 3년 마다 전출, 전입자,사망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라 장적의 작성 시기에 대해서는 755년(경덕왕 14년) 설, 815년(헌덕왕 7년) 설, 875년(헌강왕 1년)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중 여러 정황상 헌덕왕 때 작성됐다는 설이 유력하게 수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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