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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대통령을 돈으로 사겠다구"

최종웅의 세상타령

  • 웹출고시간2021.12.14 17:25:23
  • 최종수정2021.12.14 17:25:23

최종웅

소설가

# "국가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39세의 노총각은 신문광고를 보면서 솔깃한 기분을 느낀다.

도둑놈만 잡을 수 있다면 그 아까운 세금을 서민을 위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답이라도 하듯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다. 누구든 결혼하면 3억 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많은 돈을 그냥 주는 걸까. 결혼자금으로 1억 원, 주택자금으로 2억 원씩 주겠다는 것이다. 노총각의 표정이 실망으로 바뀐다. 결국 융자를 해주겠다는 것인데 내가 무슨 담보가 있나.

그게 아니다. 무담보 무보증 무이자라는 것이다. 공돈이나 마찬가지다. 드디어 결혼을 할 수 있게 됐다.

허경영이 대통령에 당선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취임 후 2개월 내에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노총각은 설레는 기분으로 핸드폰을 꺼내든다.

# 이 광고를 보고 놀라는 여자도 있다. 애를 낳으면 출산수당을 5천만 원씩 주겠다는 것이다.

결혼 3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시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다.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낳기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게 그녀의 주장이고, 저 먹을 것은 타고 난다는 게 시어머니의 반박이다.

여자의 표정이 밝아진다. 출산 수당을 줄 뿐만 아니라 매월 100만 원씩의 육아수당까지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10살 때까지 100만 원씩 주겠다는 것이니 애를 낳는 게 아니라 취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소식을 친구들도 알고 있을까? 얼른 소문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다.

# 노인은 오늘도 할일이 없다. 집에서 신문이나 뒤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묵은 신문을 꺼내든다.

18세 이상 국민에게 코로나 긴급 생계지원금으로 1억 원씩 주겠다는 광고가 눈에 뜨인다.

흙 파서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만든단 말인가. 노인은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이란 노래를 중얼거린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으니까 돈으로 표를 사려는 후보도 있다는 뜻이다. 문득 정주영 생각이 난다.

돈은 엄청나게 벌었지만,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대통령이다. 그 한을 풀기 위해서 대통령에 출마했다. 돈은 권력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만 확인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정주영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난 것이다. 정주영은 진짜로 돈이 많았으니까 공약을 믿을 수 있었다.

허경영은 기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무역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국가예산을 절약해서 100조 원, 36가지 세금을 통합해서 100조 원, 재산비례 벌금으로 100조 원, 고소득자 탈세방지로 100조 원 등 총 500조 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주영과는 다른 사람이다. 봉이 김선달이 떠오른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솜씨로 500조 원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그 재주가 홍길동 못지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본다. 그 바로 밑에도 엄청난 광고가 있다.

18세 이상 국민에게 매달 150만 원씩을 주겠다는 것이다. 노인은 가슴이 뛴다. 1억 원을 목돈으로 받는데다 매달 150만 원씩도 준다는 것이다. 노인은 맑게 갠 겨울하늘을 바라보며 씽긋 웃는다.

이때 휴대폰 소리가 난다.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가슴이 뛰는 것을 억제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만약 허경영이 당선되면 노인은 다 팔자가 피는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현관을 나선다,

# 김 과장은 신문을 뒤적이다가 눈을 번쩍 뜬다. TV토론서 허경영 공중부양 하나?란 제목이 흥미로워서다.

지금까진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할 때 허경영을 넣지 않았지만 요즘처럼 신문광고를 해서 지지율이 오르면 안 넣을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허경영이 TV토론에 나오면 어떻게 될까? 혹시 원조 논쟁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물론 제자가 스승을 추월하는 청출어람(靑出於藍)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내 돈 주는 거 아닌데 배포 큰 놈이 이기는 경쟁 아닌가. 김 과장은 이러다가 나라가 거덜 나는 것은 순식간이겠다고 걱정하면서 혀를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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