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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우암산 등산로나 정비하자

최종웅의 세상타령

  • 웹출고시간2020.06.16 16:37:29
  • 최종수정2020.06.16 16:37:28

최종웅

소설가

우암산 둘레길 조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충북도는 며칠 전 의회에 우암산 명품 둘레길 조성 사업비 100억 원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떻게 조성하겠다는 것인지 세부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우암산 순환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축소하고, 그 자리에 둘레길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9년 전에 추진하려다가 주민의 반대 등으로 무산된 것인데, 아직도 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전국 어느 둘레길을 가봐도 자동차가 달리는 옆에 둘레길을 조성한 사례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둘레길은 남녀노소가 자연을 감상하면서 편안히 걷는 것인데, 차가 달리는 옆에서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면서 어떻게 행복한 걷기를 할 수 있겠는가.

청주시는 2004년 산성에 4차선 도로를 개설하면서 옛길을 산책로로 만들었는데 요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산성 옛길이 둘레길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차량통행을 전면 금지한 데다 경관도 수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암산 순환도로 전체를 둘레길로 만들자는 것도 주민의 반대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

우암산 순환도로는 우암산을 일주하면서 청주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이지만 청주대를 비롯한 수동 주민에겐 없어서는 안 될 생활도로이기 때문이다.

만약 순환도로를 일방통행로로 변경하면 인근 주민이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게 뻔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도 않는다. 우암산 순환도로가 갖는 역사성도 무시할 수 없다.

원로 정치인 정종택 씨가 충북지사로 재직할 때 충북 소년소녀들은 전국 소년체전에서 8년 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 기념으로 전국 소년체전을 청주에서 개최하였고, 개막식에 참석한 육영수 여사에게 건의해 우암산 순환도로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암산 순환도로에는 충북 소년소녀들의 전국대회 8년 패라는 역사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청주를 상징하는 유일한 드라이브 코스를 없앨 수 없다는 주장이다.

외지에서 손님이라도 오면 가장 쉽게 청주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은 우암산 순환도로로 안내하는 것이다.

우암산 순환도로의 사계는 한 폭의 그림이다. 봄에는 벚꽃, 여름엔 가로수 터널, 가을에는 단풍길, 겨울에는 눈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이라면 우암산 순환도로 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새로운 둘레길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지형이나 예산사정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대안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게 우암산의 기존 등산로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우암산은 청주시내 여러 곳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삼일공원에서 정상을 거쳐 향교로 내려오는 코스가 유명하다.

이것만으로는 단순하다면 생태터널을 거쳐 상당산성으로 오르는 길과 연결한다면 환상적일 것이다.

그 길을 재정비해서 명품 등산로로 만들면 굳이 둘레길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우암산 등산로는 수십 년 전에 계단을 설치한 후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갈 곳이 없는 시민이 우암산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정비되지 않은 등산로를 다니다가 안전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00억 원이란 예산도 확보했으니 삼일공원에서 우암산 정상을 거쳐 향교로 내려오는 1구간과 생태터널을 거처 상당산성에 오르는 2구간, 것대산과 낙가산을 거쳐 용암 성당으로 내려오는 3구간을 연계해 재정비하면 청주의 대표 등산로로 명성을 날릴 것이다.

아울러 청주를 상징하는 우암산의 정상 부근도 위상에 걸맞은 시설을 갖추도록 정비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충북도 교육청의 협조를 받아 팔각정과 포트존을 만들었지만 숲에 싸여서 청주시내 전경이 보이지 않는다.

우암산 정상에 있어야 할 팔각정은 북쪽으로 밀려나 있고, 정상 부근은 이름 모를 묘들이 차지하고 있다.

성한 의자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낡은 시설을 방치한 채 둘레길부터 만들자는 것은 완급을 구분치 못한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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