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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그날은 참 좋은 가을날이다. 햇살이 퍼지며 차창 밖으로 붉은 단풍의 냄새와 마른 플라타너스 냄새가 난다. 지난주에 다녀왔던 천리포 수목원의 풍경과는 다르지만, 무심천 하상도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또 다른 가을 풍경이 펼쳐진다. 갈대는 갈대끼리 억새는 억새끼리 서로 어우러져 키를 재고 홀로 던져진 듯 외롭게 핀 쑥부쟁이도 철모르는 망초꽃도 보인다. 가을의 풀과 꽃은 마지막 진기를 다 끌어모아 꽃을 피운 듯 향기가 진하다. 잔뜩 몸을 웅크린듯한 토끼풀밭은 산책길에 내가 즐겨 쉬어가는 곳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네 잎을 찾으며 한나절을 보냈었다. 꼭 행운이 오기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친구들과 함께 깔깔거리는 것이 좋아서 한 개도 찾지 못하는 클로버밭을 헤집고 다녔을 것이다.

차창을 조금 열고 가을의 향기에 빠져있는데 라디오에서 김종국의 한 남자라는 노래를 흘러나온다. 나도 모르게 창문을 닫고 볼륨을 높여 듣고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는 목소리가 어쩌면 더 호소력이 있었는지 모른다. 공연히 눈물이 흘렀다. 무언가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속상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가을의 들뜨지 않은 차분하고 짙은 향기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툭 치고 들어온 한 남자에 정신을 빼앗기고만 느낌이다.

가을은 어쩌면 되돌아보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풍성한 수확 앞에서도 땀 흘리며 허리 휘게 몰입하던 지난날이 떠오를 것이고 떨어지는 잎사귀를 보면서 세상을 떠나거나 어떤 이유로든 이별한 사람을 기억하며 쓸쓸해지기도 할 것이다. 풍성하든 빈곤하든 가을은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봄이 만남의 계절이라면 가을이면 이별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계획한 것도 아닌데 가을이면 사랑의 감정을 거두어들이고 서늘하고 냉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라는 공식을 세워두고 삶을 그 공식에 대입하고 있었던 것일까. 가을에 이별한 참 바르고 좋은 사람이 있었다. 노래 가사에 '날 너무 사랑한'이라는 구절에서 울컥한다. '사랑받으면서 사랑인 줄도 모르는' 왜 중요한 것은 꼭 뒤늦게 알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이별 후에 가을 강을 무수히 헤매고 다녔다. 맑은 물소리에도 눈물이 났고 거친 물소리에도 눈물이 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몸짓에서도 슬픔을 읽었고 꼿꼿하게 버티는 모습에서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세상 모든 것이 슬픔이었고 눈물이었고 절망이었다. 생각해보면 감정의 사치를 맘껏 부리던 날들이었다.

가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뒤뚱거리다 보면 가을을 놓치고 지나는 해도 많았다. 새싹을 힘들게 세상을 향해 내밀고 비바람을 견디며 줄기를 내고 잎을 내고 꽃과 열매를 맺는 긴 여정을 지나왔지만 스러지는 것은 순간이다. 어느 것은 붉게 어느 것은 노랗게 마지막의 옷을 갈아입고 순간을 즐기지만 붉고 노란 그 화려한 옷 한번 걸쳐보지 못하고 스러지는 많은 것들이 있다. 생에 단 한 번도 세상의 눈길을 끌어당기지 못하고 단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해를 마감하고 사라지는 것들과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것들과의 눈 맞춤으로 나의 가을은 분주하다. 낙엽이 쌓인 가로수 아래를, 이제는 억새가 풀씨를 날려 보낼 바람을 기다리는 무심천 변을, 우산으로 써도 좋을 넓은 잎을 뚝뚝 떨구는 플라타너스 길을 나는 무수히 돌아다닌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가끔 지나간 한 남자도 꺼내어 '날 너무 사랑한'이라는 단어도 기억하고 그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만추의 여유를 부려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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