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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혜경

폭설에 쌓이고 인적이 끊겨 길 잃은 바람만 제 멋대로 할퀴고 가는 곳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생을 놓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마른 잎을 버석이며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던 것들이 희미한 생명의 실마리를 이어간다.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무르익어 연초록의 구름을 온 산에 둘렀다.

무심천 벚꽃도 만개하여 꽃구름 터널을 만들었다. 촘촘히 서서 사람들의 발길을 막아서는 공무원들의 눈을 피해 잽싸게 사진 한 장 찍고는 도둑질 한 것처럼 도망을 쳤다.

엄마는 연신 참 곱다는 말씀만 하신다. 당신도 저만큼 고운 여인이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신다. 지난 사진을 펼쳐 놓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여쁜 여인이 아버지와 손을 잡고 꽃나무 밑에서 다정히 웃고 있다. 걸음을 걷지 못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지금의 모습을 남들은 늙은 노파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형제들에게는 여전히 꽃 같은 여인이다.

얼마나 더 엄마랑 무심천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앞으로 열 번은 더 꼭 꽃구경하자고 엄마의 굽은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어본다. 그러자고 고개를 주억이는 엄마의 표정이 오늘은 한없이 밝다. 모처럼의 나들이라서 좀 더 멀리 드라이브를 했다. 목련공원이 이름값을 하느라고 수십 그루의 목련꽃송이를 폭죽처럼 터트리고 있다. 코로나를 피해서 나온 가족들이 잔디밭에서 뛰어 놀고 있다. 모처럼의 아이들 웃음소리가 청명하다. 공동묘지라는 무서운 느낌 보다는 이름처럼 그냥 공원으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사방을 둘러보던 엄마가 참 죽은 사람도 많네 하신다. 공연히 놀라서 마스크만 꼭 쓰고 있으면 죽지 않는다고 엉뚱한 대답을 하자 엄마도 알면서 웃으신다.

혼자서 차에 타지도 못하는 엄마를 밀고 끌어 차에 태우는 과정이 힘에 부친다. 마른 이파리처럼 뼈마디가 부스러질 것 같아도 안으려면 제 무게가 나온다. 얼마나 더 저 마른 가지 같은 몸을 안아 볼 수 있을 것인가. 얼마나 더 부스러질 것 같은 저 몸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인가. 조금만 더 내게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또 그만큼의 기운이 솟아난다. 신기하기도 하다.

지난겨울 넘어져서 골절수술을 하고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지셨다. 당신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셨는지 섬망증상를 보이기도 하셨다. 병실에서 도토리 묵 쑤러 가야 한다고 자꾸만 침대에서 일어서려고 하실 때엔 앞이 캄캄했었지만 정신이 돌아와서 천만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말하고 걷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해마다 바람과 폭설은 찾아오고 그 푸르던 싱싱함이 사라지고 만다. 여름내 가파른 담을 타던 담쟁이 잎도 다 지고 마른 수세미 같은 형상을 하지만 봄이 되고 다시 생을 이어간다.

통통하게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에 양 갈래 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고 있던 어여쁜 소녀. 뉴똥치마를 입고 아기를 안고 있던 고운 여인. 내 손을 잡고 물놀이를 가던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부인. 무심천 벚나무 밑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웃고 있는 우아한 중년의 여인.

아들 딸 손자 손녀 다 모아 놓고 가족사진 찍기를 즐기시던 따뜻한 여인. 꽃처럼 웃고 꽃처럼 화사하고 꽃처럼 어여쁜 여인. 마른 담쟁이처럼 부서져 내리고 마른 억새처럼 바람이 부는 대로 흰 머리 흔들리지만 봄이 되면 다시 생을 이어가는 들풀처럼 다시 일어서준 여인.

딸이 원하는 대로 힘든 걸음으로 벚꽃 아래서 사진 한 장 남겨주신 정말 아름다웠던 내 어머니. 도토리 묵 먹으러 가는 길에 쑥 한 줌 뜯어 떡 해 먹자는 아이가 되신 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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