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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아침에 눈을 떠보니 돌돌 감고 자기 시작했던 이불이 발밑에 가 있다. 추운 줄 모르고 단잠을 잤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에 심지가 빠졌다. 잔뜩 볼이 부어 있던 바람이 나긋나긋한 소녀처럼 온기를 담고 있다. 봄은 늦은 적 없이 늘 때맞춰 찾아온다. 마스크를 쓰고도 용케 길을 잃지 않고 와준 것이 감사하다. 절로 기지개를 켜게 된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를 서성이는데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다육식물들도 몸을 비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 국화는 웃자랐고 지난해 피운 꽃대를 아직 잘라주지 않아 꾀죄죄하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몸이 불었다고 야단들인데 우리 집 화초들도 잔뜩 살만 찌운 모양이다.

저 이쁜 화초들을 이제 출가시킬 때가 된 것 같다. 베란다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늘 꽃샘추위가 걱정되어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할 줄 아는 게 걱정밖에 없냐'고 툴툴거렸었는데 나도 그런 모양이다. 고 이쁜 녀석들을 찬바람이 할퀴고 갈까 봐 애면글면 내놓질 못한다. 이러다 숙이처럼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면 정신이 드는 것이다.

숙이 엄마처럼 착하고 다정한 사람은 몇 없으리라. 마흔을 넘긴 숙이는 아직도 아기처럼 콧소리에 혀 짧은소리를 한다. 공부를 못한 것도 예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 늘 숙이를 손바닥 위에 있는 아기처럼 땅에 내려놓지 못하는 어머니 덕에 연애해본 적도 밥을 지어 본 적도 없는 어른 아기가 되어 있다. 딸이 없는 내게는 화초가 이쁜 딸처럼 여겨진다. 새순이 돋아날 때는 마치 갓난아기를 본듯하여 손에서 눈에서 떼어 놓질 못한다. 잎이 나오는 모습, 꽃대를 밀어내는 모습, 볼그레한 꽃잎을 피우는 모습들의 한순간도 귀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겨울이면 실내에 들여놓을 수밖에 없지만, 그 따뜻함이 독이 되어 화초를 망치는 일이 많다. 너무 물을 많이 주거나 건조하거나 일조량이 부족하여 힘없이 키만 키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웃자란 줄기는 약간의 바람에도 햇살에도 상처를 입기 쉽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퉁퉁 살찌운 나처럼 다육식물 중에도 통통히 살만 찐 녀석이 있다.

사랑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방에 들어앉은 그 녀석들이 혹시라도 건조하거나 목이 마를까 봐 자꾸 물을 주고 싶어진다. 내게 병이 있다면 화분에 물 주는 병이다. 며칠 안 줘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대접 물을 부어주고 있다.

햇살 좋은 오늘은 살림을 내야겠다. 저들끼리 센 바람도 억센 빗줄기도 따가운 햇볕도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적지 않은 개수의 화분을 내놓으려면 허리가 아프긴 하겠다. 엄마는 나를 출가시키며 뭐든 참으라는 말만 하셨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황홀한 꿈만을 꾸고 있는 내가 참아야 할 것이 뭐가 있다고 무조건 참으라는 말만을 하셨을까.

누구나 살다 보면 엄마는 언제나 옳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며 거센 바람과 소나기를 견뎌야 했고 폭설의 무게를 견디고 때론 총알처럼 퍼붓는 우박도 견뎌야 했다. 그러면서 단단해졌고 흔들리지 않는 법을 익히기도 했다. 오늘 내어놓는 화분들도 견뎌야 할 것이 많으리라.

예부터 살림을 내거나 분가를 시키며 부모는 집의 안채를 지어 살림을 내었다고 한다. 그러면 분가한 자녀는 열심히 일하여 나머지 사랑채와 바깥채를 스스로 지어 완성하는 것이란다. 나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맨몸으로 살림을 내보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라는 말 한마디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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