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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1.21 17:05:54
  • 최종수정2021.01.21 17:05:54

김혜경

시인

눈이 또 온다는 소식에 지난밤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며칠 전 폭설과 추위에 자동차 시동이 안 걸리고 수도는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고 난로도 점화가 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었다. 이제 겨우 수돗물이 쫄쫄 나오기 시작했는데 또 폭설이라니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이것저것 고단한 마당에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감성에 빠지겠는가.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려고 커튼을 열고 보니 어느새 놀이터가 온통 하얀 눈밭이다. 오늘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사분사분 눈 내리는 풍경을 보니 슬며시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진다. 눈은 어느새 온갖 더러움을 지우고 시끄러운 소리마저 깨끗이 지운 것 같다. 평화롭고 조용하다. 세상일을 지우고 나니 자유롭다는 생각도 든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 눈 내리는 풍경에 사로잡혀 있는데 빨랫줄에 걸려있는 시래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김장 때 어머니가 나일론 줄을 꽈서 마치 굴비 엮듯 무청 허리를 꽁꽁 묶어 빨랫줄에 걸어두신 것이다.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말라간다. 시래기는 투명한 햇살에 푸르게 밭을 물 들이던 그 싱싱한 기억을 잊은 것인지 바람의 흐름 따라 흔들리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자랑처럼 벽에 걸어두셨던 굴비도 허리가 굽었었다. 굴비 한 두름이면 귀한 선물이었다. 형제들과 숟가락 씨름을 할 때 새끼줄에 매달린 굴비 20마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언니가 농담으로 오래 보면 짜다고 했었다. 조기의 허리께를 새끼줄로 엮어 매달면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가 굽는다. 점점 잊히는 바다의 기억을 지운만큼 허리는 굽는 것이다. 등이 굽은 것들을 보며 기억은 머릿속이 아니라 뱃속에 저장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을 잊은 것들은 허리가 굽는다. 굴비가 바다를 지우며 허리가 굽었고 시래기가 푸른 들의 기억을 지우며 허리가 굽었고 어머니가 젊음을 지우며 허리가 굽었다. 허리 굽은 것들의 쓸쓸한 모습 어딘가에서 잊힌 기억을 찾아야 할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갇혀 지내다 보니 몸이 불어서 확진자가 아니라 확찐자가 되었다. 몸이 편하니 나날이 늘어가는 살을 어쩌면 좋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부쩍부쩍 늘던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다르게 코로나는 길어지고 점점 일거리와 돈벌이는 멀어져 가고 사는 일이 막막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삶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어렵고 막막한 일이지만 지난날 익숙한 일과 생각에서 전혀 알지 못하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삶의 바탕이었고 기본이었던 것들을 버리려니 머릿속이 하얗게 바랜다. 푸른 무청도 시원한 들판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허옇게 바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익숙한 것들을 잊어가는 이유에서인지 내 허리가 굽는다. 하루하루 잊혀 가는 기억만큼 허리가 굽는다. 젊은 날의 기억을 거의 잊은 어머니는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가 굽었다. 등이 굽은 것들은 그만큼 버리고 잊은 것들이 많은 것이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던 날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사랑을 다시 가슴에 채울 수 없었고 다정하고 따스한 기억을 머릿속에 채울 수도 없었다. 그 허전함을 배 속에 채웠나 보다. 야만적이고 미련하게 밥을 먹고 또 먹고 추억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추억을 다 잊고 나면 등이 굽어 앞으로 고꾸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푸른 들판과 사랑처럼 다가오던 소나기와 음악 같은 바람 소리와 발등을 간질이며 웃게 하던 지렁이의 장난을 기억 저편에 묻고 등이 굽어 매달린 시래기의 모습과 푸른 날의 추억을 잊고 눈 오는 풍경을 '그따위 소모적 감정'이라고 표현하는, 잊은 것이 너무 많아 허리가 자꾸만 굽어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오늘도 푹푹 눈은 쌓일 것이고 잊었던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조금 펴진 등이 오히려 더 아프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꼿꼿하지 못한 것들의 쓸쓸함을 들여다보며 감성을 폭력적으로 두드리기에 눈을 폭설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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