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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충북여성문인협회장

추석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엄마는 준비에 바쁘셨다. 푹푹 찌는 더위가 사라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떡쌀을 팔아오시고 들기름 참기름을 짜러 방앗간에서 줄을 서고 계셨다. 이것저것 김치를 담글 준비도 마치고 추석빔으로 온 식구 양말까지 일찌감치 마련해두셨다. 엄마 힘으로 되지 않는 제일 큰일은 산소 벌초를 하는 일이다. 형제들이 바쁘다 보니 벌초는 늘 사람을 사서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산소 주변의 나무를 다듬는 일은 생략되기 마련이고 군데군데 거칠게 예초기가 지나간 흉내만 낸 곳도 있었다.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가끔 아버지의 산소에 들를 때면 송구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여름 장마에 나무가 쓰러져 아버지 산소를 덮쳤다는 것이다. 긴급 형제들 소집이 이루어졌다.

친정 일에 항상 뒷전이었던 나지만 쓰러진 나무도 치우고 벌초도 할 겸 형제들을 따라 산소를 찾았다. 진입로부터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어른 예닐곱이 힘을 모아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차를 세우고 예초기와 낫을 챙겨 들고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며칠 전까지 계속된 비로 숲길은 질척거리고 미끄러웠다. 그래도 온 가족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마음은 늘 즐겁고 신이 났다. 마치 명절에 선물을 싸 들고 친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들뜨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엄마 아버지라는 이름은 왜 언제나 이리도 그리운지 곁에 옷깃을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푸근해진다. 아버지를 뵐 상념에 빠진 것도 잠시, 아버지 산소 위로 나무가 쓰러져 마치 나뭇더미로 덮어놓은 듯했다. 얼마나 갑갑하셨을까.

언제나 묵묵히 자식들만 챙기시던 아버지였다. 단벌 양복으로 지내시며 변변한 코트 한 벌 없이 겨울을 나셨다. 비가 오는 날 헤진 우산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적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도 우리 다섯 형제는 제비 새끼들처럼 입을 벌리고 먹을 걸 더 달라고 짹짹거리기만 했다. 누더기를 걸치고 비바람을 맞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황망한 맘에 서둘러 잔가지부터 쳐냈다.

서툰 일꾼이 연장 탓한다고 낫질이 서툴러 낫의 이빨이 다 빠지고 휘어졌다. 맨손으로 잎을 훑어내고 있는데 옆구리에 따끔하고 아린 통증이 느껴졌다. 쓰러진 나무 근처에 둥지를 튼 벌집을 건드린 모양이다. 금세 벌겋게 부어올랐다. 이제 온 것에 대해 야단을 맞은 것 같다. 겨우 산소 위에 엎어진 나무를 옆으로 걷어내고 파인 부분을 다독였다.

이렇게 낫과 예초기를 들고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 벌초하던 일도 지금은 사라진 풍경 중 하나다. 아이들이 직장을 잡아 뿔뿔이 흩어지고 나니 날 잡아 모이기 힘들고 날카로운 연장을 다루는 일이 영 불안하여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벌초하러 가는 일은 온 가족 소풍과 같았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보자기에 챙기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초등학교 소풍날 삶은 밤과 사과 한 알, 찐 달걀을 싸 들고 소풍지까지 따라오시던 어머니의 표정이다.

벌초를 끝내고 싸 온 음식을 아버지 산소 앞에 펼쳐 놓고 먹고 떠들며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했다. 우리가 아랫목에서 장난을 치거나 배를 깔고 만화책을 읽고 있을 때도 윗목에서 빙긋이 웃고 계셨던 따스한 아버지의 미소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떼를 꼼꼼히 밟아주고 돌아내려 오려면 언제나 눈물이 났다. 아버지만 두고 떠나오는 것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고 돌아서자마자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모처럼 만난 형제들과 묵은 이야기도 사는 이야기도 풀어 놓았는데 그 온기 흐르던 풍경 하나가 까마득히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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