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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

지독히 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태양은 이글거리며 세상을 달구고 여기저기 산불을 질렀다. 종일 태양은 눈 동그랗게 뜨고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살인했다는 말이 이해되기도 하였다. 숨 막힐 것 같은 이 여름이 얼른 가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입추가 되고는 새벽 공기부터 달라졌다.

살만하다는 생각에 산책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심천의 억새가 짙푸르다. 내 키를 훌쩍 넘게 자라서 하상도로를 지날 때면 깊은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화 한 통에 따라나서 주는 좋은 사람들과 가을 여행을 떠나고 싶다. 파도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모두 떠난 한적한 바닷가 모랫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녹음 짙은 산골짜기 물에 손을 적셔보고 싶기도 하다. 가을이라는 멋진 단어는 이유도 없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칠월 팔월은 철썩철썩 팔딱팔딱 조금 거칠고 생동감이 있는 단어라면 구월은 발음부터가 부드럽다. 조용해지고 순해지는 가을의 입구이다. 중년의 계절이고 계절의 중년이다. 절박하고 애절하게 울어대던 매미의 음량이 많이 줄었다. 여름은 사라지면서 매미의 울음소리를 데리고 간다. 대신 화단 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작은 목소리로 가을을 알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소리다.

산다는 것은 늘 이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야 하는지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고 어떤 것들은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지고 없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날의 내 놀이터였던 커다란 대추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뒤뜰은 우리 형제들의 놀이터였고 우리는 등이 굽은 대추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겁이 많은 나도 걸터앉기 좋을 만큼 단단하고 평평한 등걸이었다. 이맘때쯤이면 작은 대추가 달려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큰 것들을 마구 따서 베어 물고는 비린 맛에 퉤퉤 뱉어버리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쑥쑥 키가 자란 억새 하나를 잡아당겨 본다. 건들지 말라는 듯 내 손을 밀어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얀 억새잎을 떨구지 못하고 추레하게 있더니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머지않아 억새와 갈대의 보드라운 잎을 볼 수 있으리라. 바람에 마구 휘청이는 그 쓸쓸함을 읽어야 할 것이다. 좀 더 가을이 깊어지면 억새의 마른 잎 서걱이는 소리도 들어야 할 것이고 그 스산함에 또 가슴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 짧은 날의 축제에 나도 한발 집어넣어 봐야겠다. 아직 내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여행하는 일에 게을렀다. 함께할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넉넉한 노잣돈이 없다는 이유로, 집안일이 많다는 이유로 수만 가지 일들이 늘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이유를 만들어서 붙이고 훌쩍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촌음을 아껴 쓰라는 어른의 말씀을 따라 여행이라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으로 살았으니 말이다. 소비도 미덕이라니 인제서 낭비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답답하게 사는 요즘 그만한 낭비쯤은 할 배포가 생겼는데 서로 만나지 말고 집 떠나는 일도 자제하란다. 그러지 않으면 애국이 아니라니 어쩔까나.

후드득 푸른 억새잎에 가을비가 떨어진다. 흙을 밟고 비향기를 품고 튀어 오른다. 쪼그리고 앉아서 억새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센다. 하나, 둘, 셋을 센 것 같은데 나도 잎새도 흠뻑 젖었다. 소나기 속을 깔깔거리며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주위 아랑곳없이 천천히 무심천 하상도로를 걸었다. 마스크 위를 때리는 빗소리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은 것처럼 싱그럽다. 가을비 속으로 우산 없이 여행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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