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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얼마 만큼일까. 서른 살인 사람에게는 온 생애가 되는 것이고 예슨 살인 사람에게는 반생이 되는 세월이다. 여든일곱 어머니에게는 삼분의 일의 생인 셈이다.

한 집에서 서른 해를 사시던 어머니가 이사를 하신다. 아버지의 박봉으로 다섯 아이들 교육시키고 짝 지워 살림내고 아파트 한 채 마련하시고는 얼마나 든든해하셨는지, 죽어서나 이집을 떠나리라 생각하셨으리라. 그 집에서 아버지가 가신지도 이십년, 이제 엄마가 그 집을 나오신다.

어마어마한 묵은 살림을 끌어내며 고단했던 어머니의 생을 읽는다. 집 떠나서 잘 오지도 않는 자식들의 역사와 추억을 대신 간직해두시려는지 사진과 상장, 어린 시절 받아먹던 밥공기와 이름이 새겨진 은수저까지 우리들의 역사는 거기에 있었다. 그것이 또한 어머니가 사는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을 매정한 딸년은 가차 없이 끌어내어 쓰레기봉투 속에 담는다. 하나라도 더 건질 양으로 어머니는 곁에서 서성이다 내가 돌아선 사이에 쓰레기봉투를 뒤져서 뭐라도 하나 꺼내 놓으신다. 그런 어머니를 못 본 척한다. 내가 다시 버린다 해도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다. 이제 정신도 흐려져 깜박깜박 하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아버지 시계는 쌌느냐, 목기세트는 쌌느냐고 물으신다. 네, 네 건성대답은 하면서 다시 어머니가 그것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체육선생님이셨다. 공설운동장에 체전이 있는 날 스탑워치를 목에 걸고 스타트를 알리는 총을 손에 쥐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참 자랑스럽고 멋있었다. 아버지 손때 묻은 초시계가 세 개나 나왔다. 두 개는 고장이 났고 하나는 돌려서 밥을 주니 달리기 선수처럼 잘 간다. 하나만 빼 놓고 두 개를 버렸다. 어머니는 이것을 꼭꼭 싸서 간직하고 계셨다. 아마도 젊은 날의 아버지를 어머니도 멋있는 남자라고 기억하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부식되어 가는 아버지의 손목시계도 거실장 그득했던 상패도 메달도 트로피도 어머니의 추억은 우리 형제들의 손에 의해 가차 없이 실려 나갔다.

힘없는 어머니가 포기를 하셨는지 돌아누우신다. 묵은 장이 삼십 년 버티던 자리에서 끌려나오자 움푹한 자국이 선명하다. 참 오래 든든히도 버텼다. 부모님의 온갖 옷가지들과 이불보따리, 귀중한 문서들과 아버지의 비자금과 어머니의 가계부 등이 들어 있었다. 그 장롱은 부모님의 역사이다. 켜켜이 쌓여 있는 이불, 며느리 들일 때마다 받은 솜이불의 무게만큼 어머니의 고민의 무게도 켜켜이 쌓여 갔겠지. 사람을 들이는 일은 웃음을 들이는 만큼 아픔도 들이는 거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오래된 역사에는 상처가 있다고 했다. 삼십 년의 역사에도 장롱에 눌린 상처가 깊다. 어머니의 가슴에 난 상처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 걸까. 새삼 아이처럼 세상모르고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살며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아픔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것처럼 평안하기만 하다.

평안하고 온화한 표정이 이제 나의 상처가 될 것이다. 딸이라고는 달랑 나 하나니 고스란히 병든 어머니는 내 차지가 되고 만다. 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딸에게 의탁하러 가는 어머니의 심정도 편하진 않으실 게다. 삼십 년 살림을 손에서 놓는 일도 딸년에게 생을 의탁해야하는 일도 어머니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되겠지. 그래도 가끔씩 생각을 놓으시고 모든 것을 잊으시는 것이 참 다행이다. 오래된 역사에는 늘 깊은 상처가 있고 상처는 또 다른 상처가 덮고 가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바로 역사인 거라고, 그 상처 속에 영광의 역사도 피는 것이라고 장롱 눌린 자국을 쓱쓱 문지르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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