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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6월의 장미라는 라는 말은 이제 맞지 않다. 5월 초에 넝쿨장미가 절정을 맞았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추위가 가시기 전부터 내 눈은 자꾸만 사창도 주민센터의 담장으로 향한다. 넝쿨장미가 저렇게 우아한 빛깔을 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연한 살굿빛으로 담장을 덮는다. 꽃송이도 두 주먹을 합쳐 놓은 것처럼 큼직하다. 주민센터에서 지나는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관리하며 잘 돌본 덕인지 한해도 실망을 시킨 적이 없이 소담하게 핀다. 봄마다 사진을 찍어둔 것이 벌써 십년 가까이 된다.

동네 여기저기 붉은 장미가 요란하다. 왱왱거리는 벌을 피해 다녀야 한다. 어제는 한 송이 꺾어 화병에 꽂아볼까 하는 유혹에 다가가 코를 박고 향기를 맡는데 숨겨진 가시가 손끝을 찌른다. 나를 릴케로 알았을까.

장미를 사랑한 시인 릴케는 유언장에 자신의 묘비명을 다음과 같이 지어 놓았다.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 기쁨.'

예언을 한 것인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순 아닌가. 릴케는 결국 장미 가시에 찔린 탓에 파상풍으로 죽음에 이르게 됐으니 말이다.

릴케처럼 장미에 관한 시 한편 얻으려고 향기를 맡고 꽃잎을 쓰다듬어 보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줄기를 만져 봐도 시는 아무에게나 다가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살굿빛 꽃잎을 따서 눈꺼풀을 덮고 잠시 침묵해 본다. 짙은 향기와 보드라운 감촉이 전해진다. 유곽의 기생 품이 이러했을까. 여름이 다 가도록 향기 속에 빠져볼 것도 같다.

가시에 찔린 손가락을 빨며 강의실로 돌아오며 예쁜 것들이 숨기고 있는 날카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는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해도 용서가 되겠지만 예쁘지도 않은 내가 쏘아대는 날선 말들은 아무래도 이해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 주변에도 가시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가시를 드러내놓고 있다면 사전에 알아서 준비하고 피해갈 텐데 숨겨진 가시엔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얼굴도 곱상하고 우아하고 귀티 나는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서 상식 없이 말하고 천하게 행동을 하는 믿기 어려운 사람들, 웃으며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감춘 가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 묻은 가시 같다.

계단을 오르며 어제 나는 모르는 사이에 누구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지는 않았을까, 오늘은 또 누구의 손가락을 찌르는 매운 가시가 되지는 않을까, 내게 찔리고 말 못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생각이 미치자 5월의 더위가 갑자기 밀려오는 것 같았다.

손을 꼭 오므리지 못하고 소중이 주워온 꽃잎을 책상위에 펼쳐 놓는다. 땅에 떨어진 꽃잎은 어느새 생기를 잃고 가장자리부터 말라라가기 시작한다. 조금만 힘을 주면 으스러질 것 같은 연한 속살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아기 볼에 입을 맞추듯 입술에 얹어 보기도 하고 릴케처럼 눈두덩에 올려보기도 한다. 향기도 빛깔도 곱다. 살결도 여려 누군가는 지켜야할 것 같다. 이 곱고 어여쁜 것을 지키려고 장미는 그 많은 가시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형제들에게 주변의 친구들에게, 늦게 만난 남편에게 무수히 시달려온 내 어릴 적 동무 순이가 제 속에 가시만 가득 채우고 사는 여인으로 변한 것도 그러하리라.

사창동주민센터 담장의 빛 고운 넝쿨장미를 보며 아름다운 것들이 감추고 있는 것 하나를 꺼내왔다는 생각,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내면을 억지로 들여다봤다는 생각을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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