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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9.30 16:38:28
  • 최종수정2019.09.30 16:38:28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커피의 맛을 알아보고 표현하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 난다.

"커피 맛을 잘 모른다"고 손사래를 치던 대학생들에게서도 이런 면모는 어김없이 관찰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양과목으로 서원대학교에 개설된 커피인문학(Coffee Humanities)에서는 이채로운 과제가 부여된다. 학생들은 10분 가량 한 잔에 담긴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고 묘사하는 법을 배운 뒤 카페 현장을 찾아가야 한다.

카페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서민이 홀로 운영하는 작은 커피전문점, 이른바 '원맨카페(One Man Caf·)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강의실에서 배운 대로 맛을 본 뒤 느낌을 적고 바리스타와 대화를 나눈다. 질문은 미리 준비되는데, "아메리카노의 맛이 이채롭네요, 이런 맛은 어떠하다고 표현하나요·" "이 커피는 한 종류로 만든 것인가요, 여러 산지의 것을 섞은 건가요·" "매장에서 제일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메뉴가 무엇이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등이다.

학생들은 아메리카노의 맛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적고 100점 만점의 점수를 부여해 제출해야 한다. 대체로 스무 살 안팎인 학생들은 그 동안 커피를 습관처럼 마셔왔지, 굳이 맛을 따지거나 더욱이 향미가 주는 행복을 묘사하지 않았다. 커피의 맛을 평가하란 요구를 받은 적 없고, 스스로 묻지도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커피 맛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으면 "모른다"고 돌아서거나 이렇다 할 표현을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기 일쑤다.

커피의 맛을 알아채는 것은 본능의 영역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맛을 안다는 말이다. 자극적인 신맛을 가려내지 못하는 인류는 자연 속에서 상한 음식을 구별하지 못해 도태됐다. 즉시 뱉어내야 할 쓴맛에 둔감했던 종족은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진화과정에서 사라졌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인류는 맛을 잘 구별하는 능력을 DNA에 간직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오랜 시간 연마된 감각(Sensation)과 지각(perception)의 기술은 인류에게 행복함을 선사하는 기본 자질임에 틀림없다. 행복함이란,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를 줄여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만으로 행복의 속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 점은 동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간답게 하는 것일까· 단연 인지(Cognition) 능력이다. 인지란 단순하게 말하면 '지각이 사고를 통해 판명된 것'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안개 속에서 멀리 점처럼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은 '감각'이 작동한 덕분이다. 다가가면서 지각능력이 발휘 돼 미지의 물체가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다. 감각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이 지각이다. 인지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꽤 괜찮은 인격을 지녔구나'하며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을 느끼는 지점에 비유할 수 있다.

커피의 맛을 평가하고 표현하며 묘사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커피 맛을 잘 모른다고 한 학생들이 수행한 과제물을 보면서 '인간다움'에 대해 거듭 확신을 가졌다.

"화이트 블라썸은 가볍고 목 넘김이 좋으며 살짝 쏘는 신맛이 났다. 꽃 향기로 시작해 달콤함으로 이어졌다." "다 마셔갈 때쯤에 입안에서 향이 빨리 사라지고 구수한 둥글레차 같은 느낌을 되새김질할 수 없어 못내 미련이 남았다." "입에 넣었을 때 밋밋하게 느껴졌지만 마실수록 쓴맛과 신맛이 자극적이지 않게 드러났다. 꽃 향이 나며 단맛이 옅게 보였고 목으로 넘길 때 또한 가벼웠다." 등의 표현은 흔히 말하는 커피입문자의 수준을 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손으로 하는 기술은 일정 시간 훈련을 통해 얻는 후천적 노력의 산물이다. 반면 향미를 알아 보는 것은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과 같이 타고 나는 것이다. 커피가 몸으로 들어와 나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들게 하는지를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영역이다.

학생들에게서 인지능력까지 작동한 표현도 왔다. "영화 필름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목 넘김이 좋았던 커피였다." "전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둠 속 한줄기 빛처럼, 씁쓸함 속에서 돋보이는 달콤함과 고소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잔의 커피는 우리를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 능력이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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