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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 노모(老母)를 뵙고 왔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젊고 곱던 어머니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셨고, 늦둥이로 태어난 나 또한 불혹을 훌쩍 넘겼다. 손가락을 헤아려보니, 어머니가 갑자생(甲子生)이니까 올해 벌써 여든 다섯이다.

고향집에 들릴 때마다 특별한 연락도 취하지 않지만 어머니는 늘 집에 계셨다. 아마도 자식들을 기다려온 어머니로서의 본능적인 직감이 작용하시는가보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의 손을 잡으면서 “어젯밤 꿈에 보이더니 이렇게 왔네.”라고 하셨다. 현몽을 통해 아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도 있지만, 어찌 보면 꿈에서도 아들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은 평생 고집하던 쪽머리를 자르고 단발머리를 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더 작고 외로워보였다.

며칠 전 어느 선방에 들렀는데, 마침 그곳에 살고 있는 어떤 스님의 어머니가 찾아와 있었다. 그 어머니는 출가한 아들이 보고 싶어서 수소문하여 찾아왔지만 아들은 그 모습을 꼭꼭 숨기고 보여주지 않았다. 초로(初老)의 그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그곳 주지스님에게 봉투 하나를 꺼내어 아들 스님의 약값으로 전해주라며 부탁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하산하던 그 어머니의 뒷모습은 참 쓸쓸하고 안타까운 것이었다. 과연 출가 수행자는 부모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 세속의 정을 정리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어머니 또한 절연(絶緣)의 대상이기 때문에 단호한 그 스님을 탓할 수만은 없다. 나도 한 때 세속의 인연들을 멀리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중노릇이 익어가면서 그 부분들은 수행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연이 수행에 방해가 된다면 멀리해야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일부러 피할 필요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원칙이라기보다는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라는 점이다.

요즘의 내 생각은 부모는 단절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즉, 혈육의 정을 통해 인연의 지중함을 깨닫고, 그 가족을 교화와 제도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출가한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머니 또한 독실한 불자로서 생활하고 있지만, 적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수행자라는 이름보다는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그 어떤 신분을 따지기에 앞서 모정(母情)이 우선일 테니 말이다. 이와 같이 출가한 우리들의 입장이 아니라 아들을 둔 어머니의 입장에서 그 심정을 한번쯤 헤아리면 어떨까.

지난 이맘 때 제주도 여행을 모시고 다닌 후로 처음이니까 꼭 일 년 여 만에 다시 뵌 것 같다. 그새 시력이 많이 흐려져서 날이 어두워지면 혼자 다니시지 못하신단다. 주름이 깊어진 얼굴에서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교차해 있었다. 문득, 별안간 불쑥 찾아가는 것이 어머니의 그 많은 기다림을 보상해줄 수 있을까 싶었다. 또한, 우리 형제들을 키워주신 어머니의 거친 손을 잡아 주면서 자주 들리겠다는 약속을 하였을 뿐인데도 눈가에 번지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서야 새삼 불효자임을 알았다.

해질녘, 신작로까지 배웅하면서 내내 “정말 꿈 같다”라고 되뇌던 어머니. 다른 자녀들은 명절이나 기일이면 볼 수 있지만, 출가한 아들은 어쩌다 바람마냥 왔다가니까 꿈같기도 할 터이다. 이제는 그 꿈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자친(慈親)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걸 거듭 느낀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인가.
부모님이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이고,
부모님이 안계시니 가장 궁한 가난일세.


심지관경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누구나 부모님 살아 계실 때는 자신이 가장 귀한 부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까지는 부자인 셈이다. 이제 팔순을 넘긴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까 생각하면 벌써 가슴 한쪽이 저민다. 정말 궁한 가난이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아야 할 텐데 냄비 같은 내 효심도 걱정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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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