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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8.31 17:40:31
  • 최종수정2023.08.31 17:40:31

이주석

단양군 경제과 일자리팀 주무관

우리 동네에 컴퓨터 학원이 새로 생겼다. 드디어 급변하고 있는 시대의 바람이 청주의 구도심에도 불어오던 순간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흙을 묻히며 놀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판을 두드리러 사라졌고 학교 교실마다 교탁 중앙 깊은 곳에 묵직한 아날로그 모니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컴퓨터, 저기서는 인터넷,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컴퓨터 학원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에 질세라 학교에서도 컴퓨터 방과 후 교육을 개설했으며 어머니를 졸라 건반을 두드리던 손을 키보드 위에 두게 됐다.

제일 처음 배운 것은 타자 치는 법이었다.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 때론 피아노보다 경쾌한 타닥거리는 소리. 친구들과의 경쟁은 더 이상 달리기가 아니었고 누구는 600타를 치느니, 또 누구는 1천 타를 쳐서 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느니 따위의 것으로 변해갔다.

타자를 잘 치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조수가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조수 중 한 명이었는데 매주 조회를 빼먹고 교실에 혼자 앉아 타자를 실컷 칠 수 있어 좋았다.

밖에서는 교장 선생님의 훈시 말씀이 울렸고 조용한 교실 안에서는 내용 모를 키보드 소리가 박자를 맞췄다. 게다가 선생님이 챙겨주는 조그만 간식까지, 난 타자 치는 일이 내 천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워드프로세서, 컴퓨터활용능력, HTML, 자바스크립트. 입으로만 읊어도 엄청난 것 같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어간 컴퓨터 학원에서 자칭 타자 치기 박사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홈페이지인지 뭔지, 이제는 가상의 집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교실 한구석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은 어느새 세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에는 '금복'이라는 능수능란한 인물이 등장한다. 급변하는 한국 근대 사회에서 일머리가 유연한 금복은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다.

처음엔 시골 벽촌에서 생선 장수를 따라나섰다가 생선 가공업으로 성공한다. 이어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고 도시 최초로 다방을 개업해 사람을 모으고 운수회사를 지어 교통을 장악하고 벽돌공장을 지어 사업가로서 대성공한다.

마지막으로 꿈에 그리던 고래 모양 극장을 짓는다. 그녀에게 직업이란 시대의 파도를 타는 서프보드에 불과하다. 작가의 말대로 '그것은 직업의 법칙이었다.'

만약 금복이 앞으로 도래할 AI 일자리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 스스로 뒤처지지 않게 노력해야 했던 근대 사회보다는 적응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 더 날개를 펴고 있었을 것이다.

컴퓨터 혁명의 시대에 새로운 교육들이 생겨났던 것처럼 지금은 AI 활용과 그 가치에 관한 교육들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 컴퓨터 시대에 일부 직업이 없어지고 프로그래머, 택배원, 온라인쇼핑몰 등 신흥 직업인 생겼던 것처럼 AI 시대에도 텔레마케터, 고객서비스 등과 같이 반복성있고 단조로운 직종부터 재무, 의료, 고위 관리직 등 고급 직종의 일부는 없어지겠지만 AI를 활용한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날 것이다.

AI는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 아니, 위협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번에 단양군에서 공직자의 전문 지식 함양을 위해 실시한 독서 활동으로 읽었던 'AI 시대의 일자리 트렌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AI와 기존 사물이 융합하는 사례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이는 기존 인간의 노동력도 학습과 훈련을 통해 AI에 적응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급변하는 시대를 위한 나만의 서프보드가 점점 더 절실해진다. 다시 컴퓨터 학원에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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