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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쏭징 (Song Dinh, Dinh River), 강변에 서 있다. 베트남 남쪽 끝 바리아 붕따우를 흐르는 강이다. 강변에 노을이 진다. 가을이지만 이 남국에는 가을이 없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의 남쪽 지방에는 뚜렷한 계절의 구분이 없다. 변하지 않는 푸르름이 이곳의 변하지 않는 계절을 말해준다. 강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강기슭에 서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내 귀속을 울리는 시가 있다.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다. 시는 강 위의 노을에 비친 속 모를 사연과 사랑을 노래한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이 시는 시인이 20대 중반에 쓴 시이다. 젊은 시인은 저녁 강을 보며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까. 강 위에 떨어지는 불빛을 보면서 나의 상상은 시인과 함께 저녁 강가를 걷는다. 시를 다시금 중얼거리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시인이 단지 슬픔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리라고 짐짓 추측해 본다.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빗대어 시인은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남에게 말하기엔 부끄럽고 슬픈 사랑, 그러나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깊은 사랑, 드러내지 못한 사랑을 강물 위에서 타는 울음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지막 행의 '소리 죽은 가을 강'은 시인의 마음이었으리라.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마음.

당신도 이렇게 슬픈 사랑 하나쯤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노을처럼 붉고 강물처럼 깊은, 어느새 까만 숯이 되어 가슴 속에 숨어버린 사랑. 유년의 어디쯤, 혹은 풋사랑을 느끼던 어느 시절엔가 가슴에 품고 울던 사랑.

송징에 노을이 진다. 이 강에도 사연이 있을 것이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이나, 다시 찾아온 사랑을 나누는 이나, 강은 말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품고 더 넓은 바다로 흘러간다. 수없이 많은 '미칠 일'을 하나로 모은 다음, 바다는 출렁대며 하얀 파도를 흩뿌릴 것이다.

만년의 시인은 병상에서 통증과 싸우다 64세의 나이에 슬픔을 껴안고 바다로 떠났다. 그는 김소월의 계보를 잇는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붉고 아름답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타고 있다.

나는 강을 다시 바라본다. 진흙이 풀어진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물 위에 잇달아 불빛이 떨어지며 새로운 형상을 그린다. 목선이 물살을 가르며 조용히 지나간다. 햇빛에 마른 잎새 몇 장이 강물 위로 떨어진다. 순결한 잎새의 슬픈 이마쥬. 사람들의 말소리와 굽이치는 이야기 속에 엉긴 사랑이 바다를 향해 천천히 흘러가고 노을은 애타는 마음에 겨워 강에 물든다. 이 남국에도 가을이 지고 있는가

문득, 붉은 단풍이 하염없이 퍼붓고 어디선가 흰 눈이 내릴 내 나라의 강과 사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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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