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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중

밤새 비가 내린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 유리창을 보니 빗방울이 가득 맺혀 있다. 자세히 보니 지금도 내리고 있다. 비가 오고 있는데도 빗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다니 너무나 이상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에선 빗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살고 있던 집을 허물고 지난달부터 새 집을 짓고 있다. 완공될 때까지 잠시 다른 사람의 아파트를 빌려 두 달째 살고 있는 중이다.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라 뭐든지 낯설고 어색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그렇고, 매일 좁은 주차장에 자동차를 끼워 넣는 것도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다. 주방도 익숙하지 않아 식사도 대충 해먹게 된다.

먼저 살던 집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13년 동안 살았던 옛 집은 허름한 단층 건물이었다. 창문이 많은 탓인지 유난히 빗소리가 잘 들렸다. 그 빗소리를 난 무척 좋아했다.

어느 해 봄날, 나는 가벼운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늦은 밤부터 살금살금 비내리기 시작하더니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점점 마음속으로 젖어 들어왔다. 또르륵 또르륵, 타닥타닥……. 평소 좋아하던 빗소리가 그날따라 너무나 구슬프게 들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며 괜스레 눈시울을 적셨다.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하며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든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밤새 꿈인 듯 아닌 듯 잠결을 헤매다 붉게 물든 눈으로 새벽을 맞이했었다.

빗소리 때문에 힘든 밤을 보냈던 그 방은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처음엔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두 아들이 옥신각신하면서 지내던 방이다. 쑥쑥 커가던 작은아들의 키를 재 준다며 벽 한쪽에 연필로 표시를 하기도 했다. 어릴 때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월이 흘러 큰아들이 군대를 가고 작은애는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게 돼 그 방을 내가 차지했다. 공부방으로 쓰면서 아이들 숨결을 느끼곤 했다. 그 즈음 나는 큰 수술을 한 후 절망과 희망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었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있는 작은 아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그 방 책상 앞에 앉아 전화기를 통해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합격입니다" 하는 말과 함께 수화기속에서 아들 이름이 흘러나올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까지의 모든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벅차올랐다. 기쁜데 왜 눈물이 나는지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동안 울먹였었다.

그 후 작은아들은 대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고 제대한 큰아들이 다시 그 방을 쓰게 됐다. 몇 년 후 큰아들도 결혼해 분가하고 그 방은 또 내 차지가 됐다. 그 뒤 대부분의 시간을 그 방에서 보내면서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다.

지난 3월 청주시립도서관은 '책 읽는 청주' 선포식을 개최하면서 2015 상반기 대표 도서로 백희성 작가의 '보이지 않는 집'을 선정했다. 건축가이기도 한 작가는 집집마다 남아있는 사람의 흔적에 대해, 집은 삶의 흔적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리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그곳을 사랑과 추억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결국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얘기다.

새 집이 지어지고 있다. 지난 날 고단했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가야겠다. 작은 공부방을 하나 만들 계획이다. 책장에 책도 많이 준비하고 가족사진도 예쁘게 걸어놔야겠다. 며느리와 손자까지 생겼으니 이제 더 많은 사랑과 추억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늦은 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소록소록 들리는 빗소리를 이젠 마음껏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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