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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중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배울 곳이 많다. 각종 학원은 물론 주민자치센터, 문화원, 시민회관, 대학교 평생교육원, 백화점 문화센터 등 많은 곳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사람들이 배우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직업적인 수업도 있고 단순히 교양을 쌓는 수준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배울 수 있다.

지난 봄, 가끔 찾아가는 분평동 한 골목에서 문득 한문서당 간판을 보았다. 멋진 한문시라도 배워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당문을 두드렸다. 서당 내부 한 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좋은 한문 글귀와,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들을 보니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6개월 코스의 교육과정을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첫째 과목은 사자소학이다. 사자소학은 모두 넉자로 정리된 글로서, 한문을 익힘은 물론 우리가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 등을 상세하게 가르치는 생활철학의 글이다. 옛 선조들이 서당에서 공부할 때 처음 배우던 것으로 지금으로 보면 초등학교 시절에 배우는 과목인 셈이다.

양가부모를 다 잃은 나로서는 효도편의 다음 내용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다. 父母呼我(부모호아)어시든 唯而走之(유이주지)니라. 父母之命(부모지명)을 勿逆勿怠(물역물태)하라. 若告西適(약고서적)하고 不復東往(불부동왕)이니라. 平生一欺(평생일기)라도 其罪如山(기죄여산)이라.

풀이하면 이렇다. '부모님께서 나를 부르시거든 대답하고 달려갈지니라. 부모님의 명을 거스르지 말고 게을리 말라. 만약 서쪽으로 간다고 고하고 다시 동쪽으로 가지 마라. 평생에 한 번만 속일지라도 그 죄는 산과 같도다.'

처음엔 단순히 한문을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선 공부가 온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50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자꾸만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웠었는데 사자소학 효도편 내용은 나를 그만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나의 잘못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던 것이다. 어머님의 말씀에 대답은커녕 무시하기 일쑤고 선의라는 핑계로 무심코 거짓말을 한 적은 또 얼마인가.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정말 힘든 생활을 했던 것 같다. 벌이가 신통치 않은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엄마는 가끔 품을 팔러 다니셨다. 고단한 몸을 달래려 마신 막걸리 한 잔은 집에 돌아와서도 표시를 냈다. 아버지는 그게 못마땅해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해댔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 주정 아닌 주정을 했다. 나는 그 모두가 싫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밤늦도록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고 어느 날은 말도 없이 친구네 집에서 자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 당시 엄마는 다 큰 딸의 외박에 얼마나 속을 태우셨을까· 팍팍한 살림살이에 딸까지 속을 썩였으니 너무나 외로웠을 것이다. "너도 딸을 낳아봐라", "너도 늙어봐라" 하던 말씀이 귀를 울린다.

부모님 돌아가신지 벌써 십여 년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나는 사자소학을 통해 엄마의 마음을 짐작하고 아버지의 책임감을 느낀다. 너무나 늦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교육부는 최근 한자 교육을 강화하고자 2018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글학회와 관련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현재 중학교부터 진행되는 한문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우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순히 한자만 일찍 배우는 것은 의미 없다고 본다. 사자소학처럼 한자 속에 깃들어 있는 훌륭한 뜻을 잘 풀어서 교육하면 한자도 배우고 인성도 길러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찍 시작할수록 좋겠다. 나처럼 너무 늦게 깨달아 가슴을 치며 울먹이는 어리석은 이가 적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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