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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3.18 18:31:3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기차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구한말 정치가 김기수(1832년~?)였다. 그는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후 1876년 '일동기유'라는 기행문을 쓰게 된다.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화륜거(火輪車)를 타니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같이 날뛰었다. 차체는 안온하여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며, 다만 좌우에 산천초목,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하므로 도저히 잡아보기 어려웠다"

금년은 한일병합 100주년이면서 또 충북선이 기공식을 가진지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충북선은 그러나 조치원역서 봉양역까지 129.2 ㎞ 구간이 한번에 연결되지 않았다. 먼저 조치원-청주 구간이 지난 1920년 11월에 준공됐다. 이후 1923년 5월에는 증평(曾坪)까지, 1928년 12월에는 충주까지의 총 91.7 km가 연장 개통됐다. 충주∼봉양 구간은 광복 후인 1958년에 준공돼 중앙선에 연결됐다.

일제는 한반도 항구와 만주를 연결하기 위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경원성 등을 X자형으로 차례로 부설한다. 이후 일제는 1920년대부터는 산업용 철도를 깔기 시작한다. 이 X자형 기본축에서 지선망으로 부설된 것이 충북선이다.

충북선 공사를 처음 시작한 주체는 일본내 여러 사철(私鐵) 기업체 중의 하나인 '중앙철도' 회사였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1차대전 특수 덕분에 엄청난 호황을 누리면서, 매우 풍부한 자본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일본기업들은 풍부한 유동성 바탕으로 강점한 한반도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외형적인 것으로, 충북선은 조선총독부 주도아래 한반도 경제를 수탈하는 교묘한 통로로 사용됐다. 일제가 1920년대 작성한 '조선의 사설철도'라는 자료를 보면 당시 충북선을 통해서는쌀,벼,연초 등 주로 1차 농산물이 주로 유출됐다. 반면 유입된 화물은 조 등 곡식 외에 약간의 공산품으로 경부선을 거쳐 반입됐다.

이같은 현상은 충북선이 연장 개통된 1928년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아 청주,충주 등에서 반출된 1차 농산품이 전체 운송화물의 61% 가량을 차지했다. 이는 식민지 지배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으로, 이때 이미 충북은 일본 경제의 원료 공급지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밝힌대로 충북선 충주~봉양 구간은 해방 후인 1958년에야 연결됐다. 일제가 물러간지 한참 뒤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필요성이 작용했다. 먼저 충주~봉양 구간 연결로 경부선과 중앙선이 비로소 횡으로 연결됐다. 이전까지 충주에서 철도로 서울을 가려면 청주-조치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충주 비료공장에 있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국내 충주비료공장에 무연탄 공급을 원할이 하기 위해 봉양까지의 충북선 연장을 서둘렀다.

그러나 충북선은 충북 균형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 면이 있다. 충북선이 지나가는 곳과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에 산업 불균형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철도가 지나가는 청주,충주,음성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반면 단양, 보은 등은 뒤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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