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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시인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빗소리가 몰고 온 어둠만 가득한 방 안, 당신과 나의 시간이 혼재된 이 좁은 공간에서 오늘따라 생각이 자꾸만 당신의 시간 쪽으로 향하고 있소.

어느새 지천명, 살아야 할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더 많은 생의 8부 능선에서 돌아보는 지난 시간, 가슴에 멍울로 남아있소.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아픔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추억은 그리움이고 그리움은 다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슬픔도 아픔도 지나고 나면 그리워진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소, 당신이 한 땀 한 땀 느린 바느질로 몇 밤을 새워 이불을 만들어 가듯 우리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가를,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인가를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저 길의 끝을 향해 우리는 또 얼마나 소중한 걸음을 옮겨야 하는지를….

사는 동안 문득문득 낯설기도 했던 당신, 때론 굳게 빗장 내린 당신의 방을 기웃거리면서 원망과 노여움에 분노도 했지만, 당신 역시 나의 방 문전을 서성거리다 돌아섰을 그 무수한 날의 슬픔을 이제야 알겠소. 미안하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 걸어둔 내 마음의 빗장을 모두 풀고 방마다 당신의 자리를 비워 두겠소.

창밖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어요. 어느 날인가 그날도 밤새 비가 내렸지요. 빗소리에 묻혀온 당신의 기침 소리에 잠이 깬 후 선잠에 훔쳐본 당신의 뒷모습이 가로등이 만들어낸 어둠의 발자국보다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아프게 내 가슴을 지나가던 그 날, 감기 옮는다고 돌아누워 소리죽여 토해내던 기침 소리가 아직도 이명처럼 귓전을 맴돌고 있다오.

그새 참 많은 시간이 흘렀구려. 돌아보면 한 것 아무것도 없는 데, 지나온 걸음걸음 후회만 쌓였는데, 당신은 벌써 반백이구려. 힘든 살이에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겠다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던 당신, 보수적인 성격에 이런저런 하고 싶은 것 들을 끈질기게 반대만 했던 지난날, 눈물을 흘려가며 그래도 그 끈을 놓지 않았던 당신,

그때, 조금만 더 빨리 당신을 이해했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사회에 발을 딛게 할 걸 하는 미안함에 늘 가슴 한켠이 저리다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다고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여보! 아픔으로 슬픔으로 때론 기쁨으로 우리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사라진 시간, 그 끝에는 늘 그리움이 있어요. 그래서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거겠지요. 먼 훗날 근거 없는 그리움에 우리 무심코 슬퍼질 때, 걸어온 길의 끝에서 빛바랜 기억의 사진첩을 넘기며 후회 아닌 후회를 하는 날, 그날도 우리가 백 년을 약속하던 그 날처럼 함박눈이 내렸으면 좋겠소. 그날은

두서없이 써내려 온 우리의 긴 독백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지요. 후회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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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충북도 경제부지사 "고향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

[충북일보] "'고향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앞만 보며 열심히 뛰었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김명규 충북도 경제부지사는 취임 2년을 앞두고 충북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만큼 매일 충북 발전에 대해 고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부지사는 취임 후 중앙부처와 국회, 기업 등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거침없는 행보에 나섰다. 오직 지역 발전을 위해 뛴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투자유치, 도정 현안 해결, 예산 확보 등에서 충북이 굵직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견인했다. 김 부지사는 대전~세종~청주 광역급행철도(CTX) 청주도심 통과,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 조성 추진, 청주국제공항 활성화 사업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지난 2년 가까이를 숨 가쁘게 달려온 김 부지사로부터 그간 소회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2022년 9월 1일 취임한 후 2년이 다가오는데 소회는. "민선 8기 시작을 함께한 경제부지사라는 직책은 제게 매우 영광스러운 자리이면서도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와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