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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숙

청주대학교 명예교수·교육학박사

나이 탓 인지 요즘은 통 일하기가 싫다. 특히 청소가 제일 힘들다. 힘들여 청소해도 하루만 지나도 또 먼지가 보인다. 백내장 수술을 하기 전에는 그 먼지가 잘 안보여서 마음이 편했는데, 수술을 하고나니 눈이 밝아져서 먼지만 보인다. 청소 좀 해달라고 남편한테 부탁하면 '거 참, 눈 수술을 안했어야 하는데…'하며 툴툴거린다.

세끼 밥을 준비 하려면 온 종일 부엌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맛도 없다. 다행히 남편의 한 가지 장점은 음식 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입에 맞으면 먹고, 맞지 않으면 그냥 안 먹는다. 난 결혼 후 줄곧 직장을 다녀서 가사도우미가 늘 있었다. 그래서 음식솜씨가 형편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 손으로 김치를 담가본 적도 없다. 마트에서 사다먹거나 남들에게 얻어먹거나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떠나서 남편과 둘이 산다.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도 내가 해 준 것은 도시락을 싸주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도시락만은 정성을 다해서 쌌다. 요즘같이 학교에서 급식을 했다면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뻔 했다. 언젠가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친구는 엄마가 집에서 과자 만들어 줬다는데 엄마는 왜 안 만들어 줘?" 그 물음에 난 할 말이 없었다.

요즘은 내가 밥상을 차린다. 아이들과 함께 있었을 때는 주말 외에는 내가 밥상을 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만 남으면서 내가 살림을 시작 했다. 아침에는 급히 출근하느라고 설거지도 못하고 부엌 싱크대에 수북이 쌓아놓곤 했다. 그러다가 야간 강의까지 있는 날은, 돌아오면 밤 10시 정도 되었다. 남편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고, 수북이 쌓인 설거지 거리는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남편도 어쩔 수 없이 내 눈치를 본다. 반면 나는 이제 남편의 눈치를 별로 보지 않는다. 피차 늙어서 70이 넘으니까 요즘 말로 갑과 을이 바뀐 것이다. 또 아이들이 오면 우리가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 그것도 갑과 을이 바뀐 것 같다. 밥상을 차릴 때도 아이들이 있으면 반찬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남편만 있을 때는 대충 먹는다. 밥하기 싫을 때는 "우리 그냥 햇반 먹을까요?"해도 싫다는 말을 안 한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

결혼 초에 시댁에 있을 때였다.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결혼 안한 시아주버니 두 사람 그리고 시누이가 있었다. 밥상을 차릴 때면 시할아버지 독상, 시아버지 독상, 시아주버니들과 남편의 겸상을 차린다. 그리고 남자들이 다 먹고 나면 남은 반찬을 정리해서 여자들 상은 부엌에 차린다.

결혼 전에는 가족 모두가 둥그런 상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곤 했다. 그런데 시집을 와서 처음 밥을 먹는데, 부엌 흙바닥에 앉을개라는 것을 놓고 "자, 밥 먹자"고 시어머니가 말했다. '아니, 부엌바닥에서 밥을 먹다니, 우리 집에서는 일하는 사람도 부엌에서 밥 먹지 않았는데…' 하고 당황하고 있는데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먼저 앉았다. 할 수 없이 따라서 앉았지만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그렇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명절이나 제사 때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들만 모여서 먼저 상을 받는다. 3살짜리 꼬마도 남자상에 끼어서 먼저 먹는다. 그 후에 남자들 상에서 남은 음식을 정리해서 여자들이 먹는다. 그래서 늘 흩어진 조기대가리와 꼬리를 놓고 밥을 먹어야 했다. 새해 첫 날에는 더욱 기분이 우울했다. 명절 날 깨끗이 차려진 밥상에서 밥을 먹어 본 지가 언제인가. 지금은 나 편한 대로 밥상을 차려준다. 남편은 아직도 '난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닌데…' 하고 생각 할까? 어쨌든 난 더 이상 밥상 차리는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때가 되면, 또 뭐 해 먹지를 고민하기 싫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지금까지 살았던 시간의 20%도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내 자신에게 충실하며 오직 내가 원하는 모습의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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