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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나름대로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있다. 참을 찾고 바름을 행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인간은 진리를 숭배하고 의를 우러르며 선을 동경한다.

사람들은 흔히 현대라는 시대를 정신분열증시대라고 진단하고 있다. 언어를 상실하고 웃음을 상실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허위와 위선과 가식의 바이러스에 걸려 갈 길을 방황하는 오늘 현대인을 위해 인생을 반성해 보고 잃어버린 본래의 자기를 되찾아 보다 참된 인생생활을 영위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현실이 고해냐, 낙원이냐 하는 것은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에피쿠로스 아리스티포스는 이 세상을 낙원으로 보고 극단의 향락주의를 제창했는가하면 예수나 석가는 이 세상을 괴로운 죄악의 세계로 보고 구원, 해탈의 도를 말했으니 말이다.

인간은 항상 영원과 불멸을 원하지만 시간은 무상해 상항성(常恒性)이 없고 세계는 변화해 상주성(常住性)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향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충청도, 내일은 전라도식으로 여행, 등산, 독서, 무색, 잡기 등 온갖 오락으로 몸과 마음을 위로해 봐도 그것은 일시적인 위안은 될지언정 영원한 위안물은 될 수 없다.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고 또 황금천하를 이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적, 병마의 적 앞에서는 손을 바짝 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인생은 천애의 고아요, 외로운 기러기인 것이다. 실로 인간의 수명은 너무도 짧다.

가사 문화가 진보가 되고 과학이 발달해 장차 양생(養生)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정신경보강제 같은 것이 나와 백세천수를 누릴 수 있다 할지라도 이 우주의 무한한 생명에 비하면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의 짧은 생명을 좀 더 보장해 보려는 욕망에서 다른 생물들과 같이 종자 번식의 본능적 욕구를 발동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수부귀, 수부귀 하지만 건강과 돈과 명예가 다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가. 자신도 자산이지만 따지고 보면 가족과 후손들을 위해서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가정은 인생의 보금자리요, 자식은 생명의 씨앗이다. 그래서 자손이 있으면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하고 자손이 없으면 슬퍼하며 나이 15, 16세만 되면 자옹(암수 짝을 이룬 동물을 세는 단위)을 가리고 여성을 찾는 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이다.

말하자면 자손과 아내는 자기의 수족을 보호하는 울타리일 뿐 아니라 자체생존의 단막을 자손만대에 유전해 자기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천추만대에 누려 보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손이 많고 처첩이 꾸러미를 꿰게 될지라도 자신의 유한한 생명만은 결국 가고 마는 것이니 여기서 또 인생은 허무를 느끼게 된다.

원해 스님/태고종 충북교구 종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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