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0.08.24 13:09:51
  • 최종수정2020.08.24 13:09:51
사마소란 조선시대 사설기관으로 지방의 젊은 유림, 생원과 진사들이 유학을 가르치고 친목과 정치 그리고 지방행정을 논하던 곳이다.

옥주사마소로 부르게 된 것은 고려시대 충선왕 5년(1313년)에 주로 승격할 때 옥천을 옥주라 부르게 돼 '옥주사마소'라 한 것 같다.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년) 옥천이라 개칭했으니 옥주라는 지명을 쓴 것은 100년의 역사다.
사마소는 사마시에 합격한 사람이 50명 이상은 돼야 설치 했다고 한다. 옥주사마소는 독립된 건물로 그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가치가 높다고 한다.

옥주사마소 현판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조금씩 내리는 빗줄기에 현판 글씨는 새로운 멋과 힘이 있다. 그곳에 흐르는 물방울이 역사의 한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문화재지정서도 보인다.

방에 들어서면 천정 대들보에 상량문이 보이고 '옥주사마소중건기' 외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툇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빗줄기에서 튀는 흙냄새를 맡으며 차 한잔하면서 옥천의 내일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곳에 대표적인 인물은 백촌 김문기와 우암 송시열 선생이다.

송시열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백촌 김문기 선생은 "효는 행인의 근본이며 효도는 덕의 근본으로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시작된다"라는 효경의 가르침을 늘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 생활의 좌우명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담장 옆 무궁화 꽃에 물방울이 맺힌 것을 사진 앵글에 담아본다.
사마소는 조선시대에 지방 고을마다 사마시 합격자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곳이다. 전곡 출납 등의 금융업과 의창 역할을 했던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상호 간 친목 도모와 후진 양성, 정치 토론 등 향촌의 교화와 지방 행정을 보조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나 점차 세력이 커지면서 폐단이 많아졌다.

수령과 향리들의 간섭을 받게 되고 노비와 토지를 늘리고 백성들을 벌 주는 등 행패가 지속됐다고 한다.

이에 선조 36년(1603)에 유성룡의 건의로 없앴다고 전해지지만 인조실록에 사마소의 폐단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뒤에도 남아있는 듯하다.
옥주사마소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로 오른쪽에 마루, 왼쪽에 온돌방과 부엌이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의창중수기'에 의하면 효종 5년(1654)에 흉년이나 비상시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곡식을 저장해 두던 "의창' 건물을 재정비해 사마소로 이용했는데 현종 15년(1674)과 고종 30년(1873)에 중수했다고 기록돼있다.

사마소는 현재 전국에 3개소(옥주, 경주, 괴산청안)가 존재하고 있다. 이 사마소에는 사마안이 있는데 과거시험에 합격한 명단이 수록된 것이다.

최초 기록은 1627년(인조 5년) 하동 정씨 고암 정립선생이 관성 사마서안을 작성했다. 김문기 선생 등 108명의 명안이 새겨져 있다.
글씨를 쓴 사람은 이운길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1658년(효종 9년) 우암선생이 작성했는데 김문기 선생을 비롯한 과거에 급제한 165명의 선비들이 등재돼있다.

세 번째는 1891년 입제 송근수선생이 작성했다. 1894년에는 '향악절목'을 만들어 사마안에 기록된 후손들이 대대로 내려온 사마계인 옥주사마소의 향악계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향악의 4대 강목' 현판을 정리하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덕업상권(德業相勸)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過失相規) 잘못은 서로 고쳐준다.

예속상교(禮俗相交) 예의로 서로 사귄다.

환난상휼(患難相恤)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다.'

옥천 구읍 여행 시 옥주사마소를 꼭 들러 보길 추천한다.

/옥천군SNS서포터즈 류재철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