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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11.10 15:21:24
  • 최종수정2019.11.10 15:21:24
진천 배티성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다.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조선의 첫 신부인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신부가 돼 한국 천주교 역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거목이다.

이러한 최양업 신부에 대해 알아보고 그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배티성지에는 최양업 신부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한국의 천주교 역사와 최양업 신부의 일생을 다룬 다양한 전시가 이루어진다.

로비에 들어서자 벽면 한쪽에 라틴어가 가득하다. 이 벽에 새겨진 라틴어들은 최양업 신부가 직접 작성한 편지들 중 마지막 편지를 베낀 것이라고 한다. 그 앞에 놓인 하얀 의자는 최양업 신부님의 땀을 상징한다고 한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1층에 위치한 상설 전시관에서 한국의 천주교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한국의 천주교 역사는 지난 조선시대에 핏빛으로 얼룩져 있는 피의 역사라 봐도 무방하다.

유교 원칙에 배척하는 천주교를 이단으로 몰아 배척하고 탄압하며, 고문과 처형을 마다하지 않았던 조선사회에서 천주교는 고난의 역사를 보내야 했다. 전시관에 전시된 각종 고문 도구들을 보면 천주교인들을 대역 죄인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천주교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나면 본격적으로 최양업 신부의 생애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된 족보 등을 통해 신부님뿐만 아니라 일가 모두가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년이 된 최양업 신부는 조선의 첫 신학생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파리 외방전교회 마카오 대표부가 있는 마카오로 유학길에 오른다. 해상으로 빨리 갈 수도 있었지만, 당시 여건상 육상으로 돌고 돌아 6개월 만에 마카오에 당도해 신앙을 수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곳 박물관은 최양업 신부의 탄생부터 유학길, 귀국 후 사목활동 등 최 신부의 모든 일생을 마치 일기처럼 하나하나 기록했다. 전시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한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들이 전시된 곳도 있다. 신앙심이 두터운 그는 자신의 스승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의 상황과 신앙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24장의 서한 중 9번째 서한을 제외하곤 모두 파리 수장고에 잘 보관돼있어 추후에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 곳곳에는 모니터나 미디어 아트를 통해 최양업 신부의 생애에 대해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영상매체를 통해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당시 조선 사람들이 공부했던 신학서를 모아둔 공간이다. 최양업 신부가 직접 만들어낸 신학서와 백성들이 가르침을 받아 적은 신학서 등 다양한 책들이 전시돼있다.

그중에는 최양업 신부가 지은 천주가사인 사향가를 한 백성이 글을 잘 몰라 들리는 대로 받아 적어 산양가라를 이름으로 잘못 기록한 책도 있다. 당시 신도들은 못 배우고 배고팠던 백성들이 많았다.

박물관 한편에는 최양업 신부가 신도들을 앉혀놓고 교리를 전파하며 신학을 가르치던 모습을 재현해둔 공간도 있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각했던 당시에는 이렇게 토굴이나 작은 움막에 숨어 조용히 신학을 전파했다고 한다.
마치 미술관에 온 듯 온통 새하얀 곳은 영상관이다. 천주교나 최양업 신부에 대한 영화 또는 영상물을 상영한다고 한다. 이곳의 의자도 모두 최양업 신부의 땀을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최양업 신부는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동료 신부이었던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는 신앙 활동 중 탄압으로 인해 처형되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최양업 신부는 과로로 인해 길에서 객사하면서 '처형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성인에 추앙되지 못했다.

한국 천주교는 얼마 전 최양업 신부를 복자로 추대하는 내용을 바티칸으로 제출했는데 심사위원회에서 최양업 신부의 신앙에 대한 공로가 인정이 된다면 탄신 200주년이 되는 2020년에 준성인에 해당하는 복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만일 최양업 신부가 복자의 반열에 오른다면 천주교 동양 역사 최초로 처형되지 않고 공로를 인정받아 복자에 오른 인물이 된다고 하니 최양업 신부에 대한 심사가 좋은 소식을 들고 내년에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 진천군SNS서포터즈 배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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